1억이냐 10억이냐… 강진 청자 감정가 ‘고무줄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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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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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가지 매입’ 논란 강진郡 도자기 2점 결국 법정행

문제의 도자기윤용이 명지대 교수(한국도자사)가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강진청자박물관의 청자상감 모란국화무늬 참외모양 주전자를 감정하고 있다. 이 청자는 2007년 강진청자박물관에서 10억 원에 구입한 것이다. 당시 소장자는 이것을 15억 원에 내놓았다. 이훈구 기자 ☞ 사진 더 보기
문제의 도자기
윤용이 명지대 교수(한국도자사)가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강진청자박물관의 청자상감 모란국화무늬 참외모양 주전자를 감정하고 있다. 이 청자는 2007년 강진청자박물관에서 10억 원에 구입한 것이다. 당시 소장자는 이것을 15억 원에 내놓았다. 이훈구 기자 ☞ 사진 더 보기
○ 논란 원인은
강진박물관 시장價 비교 소홀
한 차례만 감정 후 덜컥 매입


○ 적정 가격은
감정가 절대적 기준 없어
재감정서도 의견 엇갈려

○ 법정 공방은
담합 등 위법사실 없다면
감정위원 사법처리 힘들듯


“명품 청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격은 1억 원 이하라고 봅니다.”

“청자 주전자의 명품입니다. 10억 원은 적정한 가격입니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전남 강진청자박물관이 청자 2점을 시장가보다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구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강진군이 재감정을 했다. 그러나 가격에 대한 견해는 판이했다. 합의점은 찾지 못했고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달 초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성윤환 의원이 “청자박물관이 각각 1억 원 정도에 불과한 청자 두 점을 10억 원씩을 주고 구입했다. 감정위원들이 소장자와 결탁해 가격을 부풀린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되는 청자는 청자상감 모란국화무늬 참외모양 주전자와 청자상감 모란무늬 정병. 강진군은 성 의원의 주장을 반박하고 13일 감정위원 6명(주전자 감정 3명, 정병 감정 3명)과 원 소장자 등 8명을 사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번 논란의 쟁점과 도자기 가격 감정의 세계를 소개한다. 재감정에 참여한 4명을 제외하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문화재 관계자 10여 명은 모두 익명을 요구했다.

○ 왜 도자기인가

고려청자, 조선백자, 분청사기 등 도자기는 유물이 많이 남아 있고 수만 원에서부터 수억, 수십억 원까지 가격대도 다양하다. 보통 사람이나 상류층 모두 좋아하고 직접 구입할 수 있는 장르다. 신생 박물관에서도 전시실을 꾸미는 데 꼭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도자기다. 관심이 많다 보니 가짜도 많다. 고미술상 A 씨는 “최근엔 중국을 통해 북한산, 중국산 가짜가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진위 논란이나 가격 논란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 논란의 시작

10억 원이 지나친 가격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2007년 구입한 주전자의 경우 뚜껑이 없고 손잡이를 새로 만들어 붙이는 등 원형이 아니어서 가치가 떨어진다. 개인도 아닌 공공박물관이 이 작품에 국민의 세금 10억 원을 지불했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2009년 구입한 정병도 맨 위에 솟아 있는 첨대가 비뚤어져 작품성이 다소 떨어지기 때문에 10억 원은 과하다는 것이다. 국정감사 때 한국고미술품협회는 두 작품 모두 1억 원 이하라고 밝혔다.

○ 가격에 대한 다양한 견해

하지만 모 박물관 큐레이터 B 씨는 “주전자의 경우 1억 원은 훨씬 상회한다. 물건이 좋다. 3억∼4억 원은 된다”고 평가했다. 고미술상 C 씨는 “유물은 정가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유사하다고 해도 동일한 물건은 아니기 때문에 가격이 다 다른 것이다. 1억 원 이하는 너무 낮게 본 것이고 10억 원은 과한 것 같다”고 보았다. 고미술상 D 씨는 “주전자의 경우 1억 원 이하로는 절대 살 수 없는 물건이다. 뚜껑이 없고 손잡이를 해 붙였다고 해도 좋은 것은 여전히 좋은 것이다. 고려청자 주전자의 뚜껑은 많이 사라졌다. 그게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평했다.

○ 재감정, 계속되는 논란

의견이 엇갈리자 강진군은 19일 재감정을 했다. 이 자리엔 윤용이 명지대 교수, 나선화 전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실장, 고미술상 공창훈 씨, 고미술 전문가 김익환 씨가 참여했다. 진품이라는 데 이론은 없었다. 윤 교수는 “1억 원 이하”로 감정했다. 나 전 실장은 “3억∼4억 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 씨와 김 씨는 “10억 원이 적정하다”고 말했다.

○ 가격 감정의 기준과 변수

도자기의 가격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기준 가운데 중요한 것은 예술성, 보존상태, 희소성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가격 결정에서는 수요 공급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판매자와 구입자의 상황과 취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고미술상 E 씨는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시장가보다 비싸게 사는 사례도 많다“며 ”고미술 특성상 장소와 소장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전했다.

물건을 내놓는 사람의 희망 가격도 중요하다. 논란이 된 주전자는 소장자 이모 씨가 15억 원에, 정병은 소장가가 30억 원에 내놓았다. 도자기 연구자 F 씨는 “소장자가 제시한 가격을 무시한 채 논의하는 것은 곤란하다. 10억 원은 오히려 내려간 가격”이라고 말했다.

○ 훼손된 도자기의 가격은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전자는 뚜껑이 없고 손잡이를 다시 만들어 붙인 것이다. 온전한 것보다 당연히 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전자의 경우 가격이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고미술상 G 씨는 “고려청자 주전자 가운데 온전한 것이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이 경우엔 몸통이 좋은 것이라서 뚜껑이 없고 손잡이를 해 붙인 것이 흠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 경매에선 경쟁이 중요 변수

199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조선 후기 백자철화 용무늬항아리가 840만 달러(당시 64억 원)에 낙찰됐다. 당시 두 명이 경쟁이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경쟁 때문에 예상가의 20배를 넘는 가격에 낙찰된 것이다. 이런 경우엔 감정가가 별 의미가 없다.

○ 법정 논란, 결론이 날까

감정위원들의 주관적인 가격 판단이 과연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소장자와 감정위원들 사이에 금품이 오간 경우가 아니라면 이번 사안은 사법처리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그 대신 근본적인 책임은 강진군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고미술상 H 씨는 “10억 원은 감정가일 뿐이다. 판단과 선택은 강진군이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강진청자박물관은 청자를 구입하면서 3인의 감정위원에게 한 차례만 감정을 의뢰했다. 두세 차례 추가 감정을 해서 감정가를 비교해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큐레이터 B 씨의 말. “최소한 세 차례 이상 감정을 받아야 한다. 연구자의 감정가와 시장에서의 감정가 등을 모두 들어본 뒤 결정해야 한다. 강진군 같은 감정 절차로는 누가 가격 감정을 해도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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