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캔버스 점령한 SF적 상상력

  • 입력 2009년 10월 16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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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색으로 칠한 벽에 조도까지 낮춰 어둑어둑한 한옥 전시장. 방방마다 공상과학소설에 나올 법한 기묘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작 회화가 걸려 있다. 그 안에는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복합적 이미지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한 발 다가서면 뇌의 형상을 이루는 인간군상과 거대한 우주거미가 있는가 하면 미로와 계곡, 동굴도 보인다. 무한 상상을 담은 밀도 높은 비주얼이 시각을 압도한다.

11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unc갤러리(02-733-2798)에서 열리는 지용현 씨(41)의 ‘혼돈의 새벽’전. 아날로그적 회화의 느낌이 풍성하게 살아있는 ‘스페이스 리추얼(Space Ritual)’ 시리즈를 선보인 전시다. 작업의 출발은 3, 4년 전 우주를 넘나드는 듯한 스페이스 사운드를 추구하는 록그룹 ‘호크윈드’가 발표한 ‘스페이스 리추얼’(1973년)을 들으면서 시작됐다.

“내 그림은 하나의 비현실적 풍경화로 생각하면 된다. 우주적 제의(祭儀)를 모티브로 작업한 시리즈의 전체 줄거리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재생으로 이어지지만 작품마다 의식의 개별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소멸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그림에는 낯설면서 친숙한 이미지, 기하학적 선과 유기적 형태, 태초의 고요와 우주적 합창이 뒤섞여 있다. 모래알 같은 이미지를 하나하나 그려가며 자신만의 신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전시에 나온 12점은 인터넷도 없고 10리를 걸어야 슈퍼가 나오는 경기도 안성의 작업실에 1년간 틀어박혀 수확한 결실이다.

SF문학을 좋아하고 시인이자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와 바로크 건축에 매료된 작가는 “세상에 복잡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재미를 제공한다.

이 전시는 불혹을 넘긴 작가의 첫 개인전. 시장에 이끌린, 시간에 쫓기는 작업은 질색인 데다, 완성도에 있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고집 때문이다. 그 덕분에 오랜 내공과 치열한 작가정신이 결합해 견고한 작품이 탄생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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