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와 함께 하는 에코 트레킹]금강둑길 걷기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16일 02시 55분


꿈꾸는 금강따라 4.3km… 젓갈시장 들러나 보세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스스로가 분수령이다’라는 여암 신경준(1712∼1781·조선후기 실학사상 인문지리학자)의 이 말. 분수령(分水嶺)이란 빗방울 하나를 두 개로 쪼개어 영원히 서로 만나지 못할 반대 방향으로 흘려보내는 고개를 뜻한다.
여암의 관심사는 산도, 물도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사람은 물에 기대어 산다. 그리고 그 물은 산에서 난다. 그에게 산은 분수령이다. 그런 만큼 물은 제각각 제 방향을 갖고 흐른다. 사람살이가 강을 따르다 보니 결국 사람 역시 분수령(산)으로 서로 갈린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울릴 기회가 적어 삶의 방식도 다를 수밖에. 지방마다 언어와 풍습, 생각과 문화가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분수령은 수도 없이 많다. 그걸 다 모은 게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정리된 백두대간이다. ‘대간’이란 으뜸 분수령이다. 두류산(지리산의 옛 이름)과 백두산을 잇는 반도의 골간이다. 이쯤 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여암이 왜 반도 지형을 물줄기를 중심으로 한 산의 체계, 즉 백두대간 개념으로 풀어냈는지. 4대강(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의 서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기본 틀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강경 금강하구의 둑길을 걷고 있다. 예서 금강은 오른 쪽으로 돌아 익산 쪽으로 흐른다. 그런 만큼 강 건너 부여 땅의 강변은 물돌이가 된다. 푸른 물결에 가을 햇빛이 부서지는 금강. 내가 걷는 강 왼편은 강경읍(충남)과 익산시(전북)가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너른 들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9월 말 그 들판은 고개 숙인 누런 벼로 황금물결을 이뤘다.
그 금강을 큰 다리 하나가 가로지른다. 논산 부여를 잇는 황산대교다. 금강둑길은 강경 읍내의 금강체육공원 산책로를 따르다가 황산대교를 상판 아래로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올라서게 된다. 예서 2km쯤 걸었을까. 새마을호 지나는 호남선 철도와 익산 논산을 잇는 국도(23호선)변 들판 한가운데 소나무 무성한 동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산이라 부르기 힘들 만큼 작았지만 이름만큼은 ‘화산’(華山)이다. 낙향한 뒤 예서 후학을 가르치던 우암 송시열이 붙여준 이름이라니 예사 산은 아닐 듯싶다.
이 곳 금강둑길은 걷기에 운치가 있다. 그 좋은 느낌은 자연스레 내버려둔 강변의 옛 모습에서 온다. 이 둑길만 해도 그렇다. 둑은 이 금강의 강경과 익산 쪽에만 있다. 강 건너 부여의 물돌이 들판은 옛 모습 그대로라서 아주 자연스럽다.
하지만 둑 아래 강경 익산 쪽의 강변도 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일부러 둔치를 조성하거나 그 위에 아스팔트나 인공시설물을 둔 한강의 그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어 갈대가 우거지거나 아니면 쪼가리 밭으로 활용 중이다. 그래서 이 길을 걷노라니 초등학생 시절 여름방학이면 청평(경기 가평군)의 북한강변 친척집을 찾아 걸어 갈 때 느꼈던 한적하고 아늑한 시골길이 생각났다.
요즘 이 길을 찾는 이가 부쩍 늘고 있다. 화산에 조성된 한국천주교 나바위 성지를 찾아오는 순례객 덕분이다. 나바위는 화산 아래로 너른 바위가 펼쳐졌던 곳인데 둑쌓기 전 강물이 들판을 적시던 시절만 해도 나암(羅岩)이란 마을이 있던 곳이다. 성지는 그 나바위 터와 거기에 잇닿은 화산에 조성됐다. 순례객은 개별적으로 혹은 각 성당 단위로 몇백 명씩 함께 오는데 전세낸 특별열차로 강경역에서 내려 이 둑길을 따라 성지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때는 1845년 10월 12일 오후 8시. 작은 배 한 척이 어둠 속에 나암의 화산에 접근했다. 그리고는 열세 명의 사내가 배에서 내려 강경 쪽으로 사라진다. 그중 두 사람은 굵은 베옷에 짚을 엮어 삿갓처럼 만든 것을 머리에 쓴 상복차림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페레올 고 주교(당시 조선대목구 3대교구장)와 다블뤼 안 신부(훗날 조선대목구 5대교구장)였다. 그리고 나머지 11명은 한국천주교 최초의 신부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1821∼1846)와 10명의 조선 교우였다.
이것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 한국 천주교 최초의 한국인 신부가 한국 땅에 첫 전교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한국에 천주교 교구가 세워진 지 61년 만이다. 특히 감격적인 부분은 폭풍우로 돛이 찢기고 키가 부러져 제주도에 표착하는 등 42일간 지난한 여정의 종지부여서다. 물론 김대건 신부에게는 이듬해 한강변의 새남터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은 순교(1846년 9월 16일)여정의 첫 걸음이기 되었지만.
화산은 애초 김 신부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표착한 제주도에서 최근 영국군함 출현으로 포구마다 경계가 삼엄해진 것을 알게 된 후 한강을 거슬러 한양으로 가려던 계획은 변경됐다. 강경을 목적지로 삼은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숨어 지낼 교우촌이 있고 강경포구가 물류 이동이 많은 국내 최대 내륙 항이라 배로 숨어들기 쉬운 데다 금강뱃길이 24시간 서해와 연결돼 한밤중에도 항해가 가능한 때문이다. 김 신부 일행은 강경읍내 구순오라는 신자 집에서 20일쯤 머물다 상경했다.
성지로 가자면 둑 밑 상포마을(이정표 있음) 길로 둑을 내려서야 한다. 그러면 마을을 지나 논밭 사이의 농로가 성지로 안내한다. 둑길만 걷고 싶다면 그대로 계속 걸으면 된다. 강경역에서 출발할 경우 성지까지 거리는 4.3km. 한 시간 거리다. 보통의 여행자라면 성지까지 왕복 8km를 걷고 강경읍내를 둘러보라고 권한다. 이곳의 명물인 젓갈시장 때문이다.
생선이 나지도 않는 내륙의 포구, 강경. 그런데도 전국 젓갈 유통량의 50%(새우젓은 7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젓갈시장으로 이름난 이유는 과연 뭘까. 그것은 김대건 신부가 164년 전 이곳을 찾은 이유와 같다. 수운교통의 중심지여서다. 200년 역사의 강경시장 최전성기는 1930년대. 당시만 해도 대부분 물자를 배로 실어 나르던 시대였다. 그때 강경은 원산과 더불어 조선 2대 물류항이었다. 동시에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 3대 시장이었다.
서해로 흘러드는 금강은 상류로 거슬러 오르면 충주까지 물길로 연결된다. 그래서 서해의 수산물을 내륙으로 유통시키는 물류중심이 됐다. 중국 배가 드나들던 군산항도 가까워 중국의 수입수출화물도 모두 이곳에 모였다. 서해의 생선도 같았다. 젓갈은 그렇게 실려 온 서해 수산물 중 제때 팔리지 못한 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보존수단이라고 해봐야 말리거나 소금에 절이는 것뿐이던 시절이었으니 젓갈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그런 강경젓갈이 유명해진 이유는 ‘품질’이었다. 젓갈은 대개 남해안 어촌에서 생산됐는데 남쪽의 기온이 높다보니 소금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강경은 중부지방이라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았고 그러다보니 소금 양도 적었다. 그런 만큼 맛도 좋았다. 지금은 그런 강경젓갈을 과학적으로 발전시켜 맛을 보강했다. 저염도(20∼25%)로 절인 생선을 토굴형의 저온창고에 넣고 저온발효(15∼20도)시키는 기법이다. 다음 주(22∼25일)에는 ‘강경발효젓갈축제’가 열리니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금강둑길도 걷고 나바위 성지를 둘러본 뒤 강경젓갈의 제 맛을 보기에 딱 그만이다.
강경=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트레킹 정보|
◇찾아가기 ▽자가용 △경부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서논산 혹은 연무 나들목(강경읍까지 10분 거리) △호남고속도로: 논산 나들목(20분 소요), 서대전 나들목(40분 소요) ▽철도 △새마을호: 호남선 용산∼강경(2시간 40분 소요) △KTX: 용산∼논산(1시간 30분 소요)
◇금강둑길 ▽구간: 강경역∼강경시장길∼금강체육공원∼화산대교(아래)∼금강둑∼상포마을∼화산(나바위 성지) ▽거리: 편도 4.3km ▽소요 시간: 한 시간 ▽난이도(1∼5): 가장 쉬운 1.
◇나바위 성지 ▽소속: 한국천주교 전주교구 ▽홈페이지: www.nabawi.or.kr ▽전화: 063-861-9210 ▽주소: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8
◇강경발효젓갈축제 ▽기간: 22∼25일 ▽장소: 강경포구, 젓갈시장, 젓갈전시관 ▽체험 행사: 논산에서 생산된 신선한 야채, 젓갈로 직접 담가 가져가는 행사(용기 제공). 체험신청 없이 구매만도 가능. 참가 문의는 041-730-3349, 3224. 신청은 www.ggfestival.co.kr △김치 담그기: 4kg에 9000원 △김장김치 담그기: 10kg에 2만7000원(이상 오전 9시∼오후 5시) △황석어젓 담그기: 4kg에 7000원 △어리굴젓 담그기: 500g에 1만 원(이상 오전 11시∼오후 5시) ▽논산정보: www.nonsan.co.kr
◇맛집 ▽달봉가든: 강경읍내 황산리 젓갈시장의 황해도젓갈상회(www.jgal.co.kr 041-745-5464)가 다양한 강경젓갈을 두루 맛보도록 한 상에 차려내는 맛깔스러운 젓갈반상(사진). 7000원. 041-745-5565
◇강경기차여행: 코레일투어서비스(www.korailtours.com)가 성지순례·젓갈축제 등 다양한 여행 상품을 판매 중. 1544-7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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