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애호가 열정이 산골마을 ‘희망’ 지폈다

  • 입력 2009년 10월 13일 0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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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숙희씨 전재산 40억 투자
영천 폐교에 ‘시안미술관’
5년간 20만명 찾는 명소로

“처음엔 폐교까지 팔아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멋지게 바뀔 줄은 몰랐지요. 서울에서도 구경을 많이 오면 좋겠네요.” 10일 오후 경북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주민 200여 명은 ‘가상마을 문화도시 가꾸기 선포식’이라는 이색적인 잔치를 열었다. 화산면사무소에서 6km가량 고불고불한 산길을 달리면서도 ‘이런 곳에 무슨 미술관이 있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외진 곳이다.

학생이 사라진 두메산골 폐교에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썰렁했던 공간이 주민들의 ‘희망’과 ‘자부심’으로 탈바꿈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이곳에 개교한 초등학교(가상분교)는 한때 학생 수가 700명에 이르렀으나 1999년 9명으로 급감하면서 문을 닫았다. 100여 가구에 200여 명이 사는 가상마을 주민들은 부모 형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소리가 사라졌지만 매각에는 반대했다. 가뜩이나 공허한 마음에 엉뚱한 시설이 들어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 미술애호가인 변숙희 씨(54·여·대구 수성구 만촌동)는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반듯한 미술관을 만들겠다”고 주민들과 약속해 2001년 폐교를 매입한 뒤 2004년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했다. 변 관장은 전 재산 40억 원을 들여 폐교를 리모델링했다. 신축 비용을 줄이는 한편 가급적 아이들이 생활하던 공간을 살리려고 폐교를 허물지 않았다. 미술관 이름도 ‘시안(cyan)’이라고 지었다. ‘푸르다’라는 뜻의 영어 형용사 ‘cyan’과 ‘아름다움을 편안하게 본다’는 뜻의 한자어 ‘視安’이 함께 들어 있는 이름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시안미술관은 입소문을 타고 개관 5년 만에 유명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연중 특색 있는 전시회와 미술교육, 미술자료 전시회 등이 열리는 데다 마을에는 농촌체험객의 발길이 이어져 개관 이후 이곳을 찾은 사람이 20만 명을 넘었다. 변 관장은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문화예술 전용공간이 너무 부족해 늘 아쉬웠다”며 “두메산골이지만 전국 어느 미술관과 비교해서도 손색없는 예술 공간이 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선포식에 따라 주민들은 내년 봄부터 새롭게 바뀐 마을을 방문객들에게 선보일 준비를 시작했다. 시안미술관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를 독특한 문화예술공간으로 가꾼다는 것이다. 이 학교 출신인 권영일 가상마을 문화도시 가꾸기 추진위원장(64)은 “학교가 개교할 때도 주민들이 힘을 모았는데 이제 새로운 마을 역사를 시작했다”며 “이런 미술관이 마을에 생겨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고 했다.

영천=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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