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맨얼굴’ 20선]<19>베토벤의 가계부

  • 입력 2009년 10월 5일 02시 58분


코멘트
《“거장으로서는 너무나 짧은, 그러나 탄생시킨 작품의 양적, 질적 성취도로서는 결코 짧지 않은 생애를 슈베르트는 불같이 살았다. 생애 내내 그는 베토벤, 괴테 등 당대 최고 예술인들과 호흡을 같이했으나 생전에는 최소한의 부도, 명예도 누리지 못했다. 죽는 순간까지 오로지 음악에만 매달려 신음하며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음악가들의 호주머니 사정은

작곡가든 연주가든,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자아(自我)를 전하는 수단은 말과 글이 아닌 음악이다. 옛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는 후대 사람들이 엮어 음악의 이미지 위에 덧씌운 것일 때가 많다. 니시하라 미노루 일본 도호가쿠엔대 음악학부 교수는 저서 ‘음악사의 진짜 이야기’에서 “베토벤에 관한 에피소드는 대개 ‘베토벤의 비서’를 자처한 안톤 펠릭스 신들러라는 인물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했다.

니시하라 교수는 “귀가 들리지 않았던 베토벤이 남긴 필담(筆談) 수첩을 신들러가 날조하고 파기했다”며 “교향곡 제5번 타이틀에 얽힌 일화에 나오는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는 말의 출처도 신들러”라고 지적했다.

진실은 저세상의 베토벤과 신들러만이 안다. 옛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가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위 확인이 어려운 이야기를 먼저 접한 뒤에 음악을 경험하는 사람은 음악가의 바람과 어긋나는 오해의 위험을 짊어져야 한다. 오해는 청중과 음악 모두의 불행이다.

‘베토벤의 가계부’가 소개한 음악가 이야기에는 오해의 위험을 경계한 신중함이 부족하다. 저자는 부지런히 수집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나열하는 데 그쳤다. 각 장(章) 말미에 붙인 ‘음악 속으로’는 클래식 음악 입문자를 위한 길잡이라 보기 어려운 개인적 감상문이다.

“1악장의 주제 멜로디 ‘빠바바 밤’ 만으로 온 지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운명 교향곡’에서 2악장 아다지오를 들어보라. 애간장을 끊어놓을 듯한 멜로디와 운명에 맞서 싸우는 위대한 영웅의 탄식이 느껴진다.”

어떤 한 사람과 음악을 설명하는 표현은 단정적일수록 신뢰도가 낮아진다. 그러나 저자는 파가니니를 ‘아들 위해 돈에 집착한 수전노’라 못 박고, 멘델스존에게는 ‘평생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식의 표현을 붙였다. 인용한 일화는 대부분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전직(기자)에 걸맞은 ‘의심’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책의 부제는 ‘클래식과 경제’지만 숫자를 제시한 대목에서 아쉬움은 더 커진다. 모차르트의 연간 수입 추이를 언급하면서 붙여놓은 단서는 ‘전기(傳記) 작가들의 조사에 따르면’뿐이다. ‘1784년 3700플로린’이라는 숫자를 어떤 자료에서 찾았는지 밝혀줬다면 신뢰도와 함께 읽는 이의 흥미도 부쩍 커졌을 것이다. 음악에 대한 감상문과 경제적 시각의 전기 분석을 적절히 오갔다기보다는 그 사이에서 우왕좌왕한 인상이 짙다. ‘아마도 광고나 영화에 가장 많이 쓰이는 클래식 음악이 모차르트 음악일 게다’ 같은 추측성 문장도 허다하다.

이 책이 소개한 슈베르트 이야기는 익숙히 알려진 ‘가난에 치여 죽어간 천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에 비해 니시하라 교수는 슈베르트를 바라보는 조금 색다른 시선을 제시했다.

“슈베르트 연구가인 오토 비버에 따르면 슈베르트는 1821년부터 1822년 사이에 작품 1∼7과 작품 10∼12를 출판해 2000굴덴의 수입을 올렸다. 이 금액은 동시대 관료 평균 급여의 4, 5년분에 해당한다. 적어도 1821년 이후의 ‘빈곤 이미지’는 날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은 역시 슈베르트만 알 것이다. ‘베토벤의 가계부’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가득 채워진 클래식 음악 에세이집이다. 하지만 이제 막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에게 적절한 길잡이가 될지는 의문이다. 음악 여행의 행복은 편견 없는 귀를 통해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