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맨얼굴’ 20선]<8>예술가들의 어린 시절

  • 입력 2009년 9월 2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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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병약했던 가우디는 스페인 남부의 아름다운 중세풍 소도시와 주변의 자연 속에서 남달리 상상을 즐겼다. 그는 아버지가 대장간에서 마법사처럼 철물을 다루는 것을 보고 자랐다. 탁월한 공간감각을 지닌 그는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건축가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꿈은 17세가 돼서야 확실해지지만 예술가적인 기질은 이미 어렸을 때 어렴풋이 윤곽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학자가 본 ‘거장의 성장과정’

예술가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읽을거리로 내세우는 책이 아니다. 주변 환경과 성장과정이 음악가 또는 미술가의 길을 걷는 데 미치는 영향을 따진 연구서다. 저자들은 교육학 박사들로 슈만, 쇤베르크, 윤이상, 피카소, 백남준 등 국내외 예술가의 사례를 각각 분석했다. 이를 통해 예술가의 작품세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근원을 들여다볼 수 있다. 교과서 같은 구성 때문에 딱딱해 보이지만 사례 중심의 서술이어서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19세기 낭만주의 음악가인 슈만은 지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출판사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문필가 집안 출신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적,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10대 때부터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을 조직했고 시·음악발표회를 열었다. 괴테, 실러 등의 문학에 탐닉하면서 이들의 작품을 연극, 오페라에 응용했다. 저자들은 “그의 음악은 문학과의 밀접한 조화 속에서 태어났다”고 평가했다.

바그너도 어릴 때 문학에 재능을 보였다. 저자들은 바그너가 한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가 곧바로 궁정배우 가이어와 재혼한 사실에 주목했다. 바그너의 다재다능한 기질이 배우이면서 희곡작가였고 그림에도 능했던 가이어와 닮았다는 것이다. 바그너는 16세 때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 감동해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저자들은 “체계적인 지도를 받지 못해 조기에 영재성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쇤베르크의 사례는 친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는 평범한 유대계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음악에 소질을 보였지만 체계적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다 11세 때 중학교에서 오스카 아들러라는 친구를 만난 뒤 그에게서 첼로를 배웠다. 17세 때는 다비트 바흐를 만나 함께 문학과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은행원이던 19세에 아마추어 교향악단에 입단해 거기서 두 살 위인 알렉산더 쳄린스키를 만났다. 지휘자였던 쳄린스키는 그에게 대위법을 가르쳤다. 쇤베르크가 배운 유일한 정규 작곡교육이었다.

한국의 작곡가 백병동은 4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누나, 동생, 큰형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는 충격을 경험했다. 또 만주, 황해도, 서울, 강원도 등지를 떠도는 이주생활 속에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그는 혼자서 들에 나가 풀벌레 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주변의 여러 가지 소리와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고 혼자서 속으로 생각하고 노래 부르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고 저자들은 해석했다.

아동기의 로댕은 말수가 적고 기초학습이 뒤처져 있었으며 가족이나 교사, 또래들에게서 별로 호감을 사지 못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달랬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마음이 편했고, 그림 그리기는 남들에게 떳떳이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저자들은 여러 사례를 분석한 뒤 “한 사람의 창의적 성취는 그가 어렸을 때 어떻게 자라나고 교육 받았는지, 인간과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떻게 남다르게 그것을 발전시키고 성취시켜 나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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