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맨얼굴’ 20선]<6>예술혼을 찾아서-예술가의 시련과 영광

  • 입력 2009년 9월 1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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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을 찾아서-예술가의 시련과 영광/백형찬 지음/서현

《“예술가는 ‘발칸의 장미’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에게 시련과 역경, 그리고 고난은 운명처럼 따라다닙니다. 그것은 가난일 수도 있고, 병일 수도 있고, 고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참혹한 시련을 견디어 내고 예술의 꽃을 활짝 피운 위대한 예술가들이 바로 발칸의 장미입니다.”》

가난 고독 광기… 꽃으로 핀 ‘가시’

이 책은 역사 속 예술가들의 삶을 바탕으로 그들의 예술 정신을 살펴본 것이다. 미술과 문학 분야를 다룬다. 시대별로 한국, 서양 작가들을 정리했다. 담징, 솔거부터 천상병, 백남준, 미켈란젤로, 프리다 칼로 등 동서고금의 대표적인 예술가들의 예술혼을 두루 접할 수 있다.

한국 역사 속에서도 신묘한 재능과 괴짜 같은 기벽을 가지고 예술가의 고집을 꺾지 않았던 이들이 있다. 통일신라를 포함해 삼국시대 화가로는 10여 명을 꼽을 수 있다. 고구려의 가서일 담징, 백제의 인사라아 백가, 신라의 솔거 양지 등이다. 이 중 솔거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유일한 화가다.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과 관련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소나무가 진짜인 줄 알고 솔개, 제비, 참새들이 날아들다 부딪혀 떨어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하지만 솔거가 그린 작품은 전해져 오는 게 없다. 고려시대 이규보가 지은 ‘동사유고’에 솔거가 그린 단군 그림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 무렵까지는 그림이 전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최북은 숙종 때 화가로, 기인다운 면모를 보인 예술가였다. 그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름인 북(北)을 둘로 나누어 칠칠(七七)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것이 “‘칠칠치 못한 놈’이라고 자신을 비하한 셈”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영의정을 지냈던 남공철이 지은 최북의 전기에 따르면 그는 술을 좋아해 하루에 대여섯 되의 술을 마셨고 그 때문에 살림이 가난해지자 평양, 동래를 떠돌며 그림을 팔았다. 하루는 산수화를 그리면서 산만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않은 것을 보고 누군가가 따지자 그는 붓을 던지고 일어서며 “종이 바깥은 모두 물이란 말이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어쩌다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돈을 많이 주면 껄껄 웃은 뒤 돈을 집어던지며 문 밖으로 쫓아내고선 “저런 놈들은 그림 값을 모른단 말이야”라고 비웃었다.

장승업은 고종 때 화가다. 호를 오원(吾園)이라고 했는데, ‘화선’ ‘신필’이란 격찬을 받았던 단원(檀園) 김홍도를 의식하고 지은 것이다. 오원은 ‘나도 원이다’라는 뜻으로, 자신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그만큼 컸던 인물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역관 이응헌의 집에서 살게 된 그는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도 모르게 붓을 들고 산수화 한 폭을 완성한다. 그 천재성을 알아본 주인이 그의 뒤를 봐주었다. 그를 일컬어 흔히 배워서는 될 수 없는 신품(神品) 화가라고 한다. 화명이 높아지면서 그림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지만 모두 술값으로 탕진했다고 한다. 고종이 병풍을 그리게 하면서 하루에 술을 대여섯 잔만 마시게 하자 견디지 못해 여러 번 궁궐에서 도망을 쳤다고 한다. 책은 이중섭 박수근 백남준 등 근현대 예술가들에 대한 소개로 이어진다.

서양 예술가들로는 ‘우울보다는 광기에 살았던’ 미켈란젤로, 도박 빚쟁이들에게 혹독하게 시달리며 ‘죄와 벌’을 쓴 도스토옙스키 등의 일생과 예술세계가 실렸다. 예술가론에 대한 이론적 정리와 예술가들의 삶을 테마로 한 영화도 함께 수록됐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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