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맨얼굴’ 20선]<5>화가의 빛이 된 아내

  • 입력 2009년 9월 15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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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둘러싼 총체적인 물질적, 정신적 조건들을 두루 경험한 이들은 삶과 예술의 경계에 누구보다도 확고히 서 있다. 그리고 이들의 특권적 지위는 화가의 예술과 화가의 일상을 넘나들기 때문에 더 강해진다. 누구나 예술을 느낄 수 있고, 만들 수 있고,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이 존재한다면, 화가의 아내들이야말로 여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녀들,내조자가 아닌 창조자였다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는 여성미술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다. 여성과 미술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저자는 화가의 아내를 단순히 내조자로 보는 것을 넘어 ‘적극적 예술창조자’로 정의하고 근대 화가의 아내 10명의 생애를 다뤘다. 1부에서는 그림을 그렸던 5명을, 2부에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화가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친 5명을 소개한다.

저자는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을 훌륭한 ‘예술 경영인’으로 평가한다. 그는 시인 이상과 사별한 후 1944년 세 아이를 둔 김환기와 재혼했다.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남편의 작품 세계를 미술계와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1974년 남편이 미국 뉴욕에서 사망한 이후 그는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예술전문지 ‘공간’에 남편에 관한 글을 10회에 걸쳐 연재했다. 그는 뛰어난 수완으로 1975년과 1978년에는 뉴욕과 파리에 환기재단을 설립했으며 1989년 두 재단을 통합해 서울로 옮겨왔다.

김기창과 박래현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함께 전시회를 개최했던 화가 부부이다. 이들은 30년의 결혼생활 동안 17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박래현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일본 유학을 한 엘리트 여성이었다. 가난하고 청각장애가 있지만 인격과 화가로서의 원숙미를 갖췄던 김기창을 만나 1946년 결혼했다. 결혼생활은 녹록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경쟁하며 예술세계를 키워나갔다. 그러던 중 박래현은 1967년 평생의 꿈인 미국 유학을 떠난다. 당시 47세에 1남 3녀를 둔 어머니이자 성신여자사범대 교수였다. 저자는 그를 “네 아이의 엄마이면서도 끝내 스스로를 전업화가로 우뚝 세운 기념비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박수근의 그림에는 유달리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그중 대부분은 아내 김복순을 모델로 그린 것이었다. 부부는 모두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유달리 화목한 가정에 대한 욕구가 컸다. 결혼 10년 만에 6·25전쟁이 터지자 박수근은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홀로 월남해 2년 동안 서울 처남 집에서 살았다. 이때부터 박수근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여성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1952년 월남한 아내와 다시 만난 박수근은 아내와 일생을 함께하며 일상의 평범한 기쁨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

이중섭의 결혼생활은 박수근과 대비된다. 이중섭은 1945년 도쿄 문화학원 유화과에 유학하던 중 일본의 부잣집 딸 이남덕과 결혼했다. 이남덕은 결혼한 뒤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강원 원산에서 한국인의 아내로서 살았다. 하지만 일본인에 대한 사회적 반감과 향수를 이기지 못하고 이남덕은 1952년 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 아내를 떠나보낸 이중섭의 그림은 이때부터 긴장감 넘치는 화풍을 띤다. 이중섭은 이후 가난과 고독 속에서 살다 1956년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이 밖에도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이응로, 암 투병 속에서도 초인적 예술혼을 발휘한 하인두, 동심의 화가 장욱진 등의 아내를 지면에 싣고 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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