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들 ‘얼마나 가나 보자’ 하더니 지금은 하루 300~400명씩 동참”

  • 입력 2009년 8월 26일 02시 55분


■ 봉은사 경내 1000일기도 마치는 명진 스님

‘돈 많지만 불심 없는 절’ 평가
스님들 고된 수행 앞장서니 변해

“비 오는 날이면 1000일 기도하러 불당에 가기가 지긋지긋했죠. 신도들과 한 약속 때문에 억지춘향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허허.”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의 주지 명진 스님(59·사진)이 30일 정진기도 1000일을 맞는다. 주지에 취임한 지 한 달 뒤인 2006년 12월 5일 시작한 1000일 기도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스님은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때 불교의식을 집례하기 위해 기도 기간에 나갈 수 없다는 원칙을 깨고 단 한 차례 바깥출입을 했다. 그는 “봉은사 신도인 권양숙 여사의 거듭된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1000일 기도를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주지를 맡았을 때만 해도 봉은사는 내분이 끊이지 않고 강남이어서 돈은 많지만 불심 없는 절이란 평가를 들었죠. 이런 생각과 스님들이 수행을 게을리하는 풍토부터 바꾸고 싶었습니다. 출가는 수행이 목적입니다. 수행이 전제되지 않으면 도량이 아닙니다.”

스님은 처음부터 오전 4시에 18명의 스님을 모두 깨워 예불을 드리게 했다. 명진 스님부터 마당을 쓸고 발우공양을 했고 하루 세 번에 나눠 1000배를 올렸다. 그는 “처음에는 스님들이 힘들어 죽겠다고 난리였는데 지금은 군기가 꽉 잡혔다”며 웃었다.

스님들이 변하자 신도들도 변했다. 처음에는 ‘얼마나 가나 보자’는 비아냥거림이 들렸지만 500일이 지나자 신도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점심시간에 300∼400명이 함께 기도한다. 봉은사를 찾는 불자도 늘어났고 살림도 풍성해졌다. 신도는 2006년 약 20만 명에서 지금은 25만 명으로 늘어났고, 불전함(佛錢函)에 돈이 늘어나고 기도 신청이 많아지면서 한 해 예산이 80여억 원에서 120여억 원으로 증가했다. 일요법회에는 100명 정도가 나왔는데 지금은 1000여 명이 참여한다. 스님은 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종무회의에 신도들을 참여시켰다.

스님은 9월 3일부터 강원도 한 사찰의 선방으로 떠나 두 달 정도 머물 계획이다. 10년 넘게 봉은사에서 새벽예불을 드린 허효순 씨(64)는 “명진 스님이 잠시 떠나 계셔도 이제 봉은사의 수행 분위기는 흐트러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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