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없는 박물관은 유령의 집”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 정년퇴임 하는 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전통문화 마당쇠’ 41년 외길… 생활밀착형 전시 정착시켜

아니나 다를까, 그는 두툼한 서류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한국전통문화학교, 국립민속박물관 등 자신이 몸담은 기관에 관한 자료를 내놓더니 이 기관의 미래부터 말했다. 41년 공직 마감을 열흘 남짓 앞두고도 열정은 여전했다. 안팎의 평대로 ‘전통문화의 마당쇠’ 같았다.

19일 오전 서울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65)을 만났다. 그는 문화재 분야 41년 학예직 생활을 마치고 31일 오전 11시 충남 부여군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정년퇴임식을 갖는다.

느티나무 뒤편으로 건청궁이 보였다. 1993년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옛 전통공예관)이 있던 곳이다. 그는 1968년 문화재관리국 한국민속관(국립민속박물관 전신) 학예연구사로 첫발을 디딜 때를 회고했다.

“당시 경복궁 수정전 회랑의 6평짜리 공간에서 업무를 봤는데 임시 자리였어요. 쌀 한가마에 6000원 할 때 월급이 6800원이었죠. 그래도 밤새워 일했어요.”

그는 문화재관리국, 국립광주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을 거쳐 2003년 전통문화학교 총장에 취임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보낸 21년 중 13년(1986∼1994, 1998∼2003)을 관장으로 일했다.

이 총장은 열악한 예산과 조직을 키우기 위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계부처 공무원을 찾아 절까지 해가며 성과를 냈다. 그는 “예산 관련 부처 직원에게 삼겹살과 소주를 사면서 문화재와 박물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문화재 담당 공무원이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건 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관객 없는 박물관은 유령의 집”이라고 말해 왔다. 관객의 눈높이에서 생활밀착형 전시 프로그램을 만들자 1990년대 들어 민속박물관 관람객이 늘어났다. 2001년 정월 대보름엔 20만 명이 몰렸고 그해 5월 관람객 누계 20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엔 관람객 200만 명 중 95만 명이 외국인이었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박물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성과를 내기 위해 그는 후배들에게서 늘 ‘독종’ 소리를 들어야 했다. 1990년대 초엔 쓰레기를 손수레로 치우다 허리를 다치기도 했다.

이 총장은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2회(62학번) 졸업생이다. 2000년대 초 이 총장이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지낼 때 동기생인 지건길 문화재위원은 국립중앙박물관장,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지냈다. 동기 3명이 문화재 3대 기관장을 맡은 것이다.

전통문화학교로 자리를 옮긴 지 6년이 된 그는 “이름을 대학으로 바꾸고 대학원 신설을 이루지 못해 아쉽다”며 “그래도 이론을 갖춘 한옥과 금속공예 장인을 양성하기 위해 전통한옥학교, 금속공예학교 커리큘럼을 개설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25일 국립민속박물관 느티나무 아래에서 ‘한국 민속신앙의 탐구’ ‘인간의 달력, 신의 축제’ ‘문화의 옛길을 걸으며’ 등 3권의 출판기념회를 연다. 퇴임 뒤에도 10년 계획으로 연구 저술에 전념할 예정이다. 그는 “한국 민속박물관사, 한국의 성 신앙, 한국의 장승 연구에 매진하고 싶다”며 향원정 너머 건청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의 젊음과 눈물이 배어 있는 곳이죠. 하지만 추억보다는 미래를 향한 꿈이 더 중요합니다. 남한테 베푼 것이 있다면 다 잊고 빚진 것만 기억하겠습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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