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진부한 패션은 꿇어라”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 아름다움 창조한 세기의 여성들

패션의 계절 가을이 코앞이다.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은 이 계절, 그 ‘아름다움’의 기준을 다시 써내려간 선구자들은 누구였을까. 탁월한 감각과 용기로 시대를 앞서간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선구자적 ‘커버 걸’ 나오미 심스

‘부스스한 곱슬머리, 검은 피부….’ 흑인들에 대한 인권 침해는 물론이고 그들의 외모마저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치부되던 시절, 미국 최초의 흑인 의사 겸 변호사였던 존 록 스튜어트는 인종 차별로 서슬 퍼렇던 1850년대 보스턴의 한 노예해방 운동 연설회에서 흑인만의 미(美)를 강조하며 외모 콤플렉스에 젖어 있던 흑인들을 꾸짖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1960년대에 들어서야 그의 주장은 ‘블랙 이즈 뷰티풀(Black is Beautiful)’이라는 기치를 내건 사회문화 운동으로 급격히 전파된다. 그 한가운데에는 흑인 여성 나오미 심스가 있었다.

1968년 11월 미국 주류 여성 잡지인 레이디스 홈 저널의 커버를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장식하며 ‘블랙 이즈 뷰티풀’의 대표적 심벌이 된 것이다. 그는 이달 1일 세상을 떠났다. 3일자로 사망 소식을 전한 뉴욕타임스는 ‘선구자적 커버 걸, 61세에 지다’라는 오비추어리 기사를 통해 그의 삶을 조명했다. 심스가 선구자라는 칭송을 듣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주류 잡지의 커버모델로 발탁됐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피부가 너무 검다”며 자신을 모델로 쓰기를 거부하는 사진작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마침내 한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하는 데 성공한 그의 얼굴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모델 에이전시에서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레이디스 홈 저널 ‘커버 걸’ 등극도 잇따랐다. 그러나 그는 성공에 도취되지 않았다. 평소 “아무도 찾지 않는, 은퇴한 모델처럼 슬픈 존재는 없다”고 말하곤 했던 그는 5년이라는 짧은 모델 활동을 접고 가발 사업을 시작해 사업가로서도 성공을 거뒀다.

○ 패션계의 혁명 코코 샤넬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100인’에 패션계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이름을 올린 이가 있다. 코코 샤넬은 당시 장례식에서나 쓰던 검은색을 기본 색상으로 쓰는 ‘모험’을 감행한 것은 물론이고 여성들을 답답한 코르셋(몸매 보정 속옷)에서 해방시킨 여성 복식계의 ‘혁명가’로도 뽑힌다. 혹자들은 보육원 출신의 가난한 재봉사였던 그가 수많은 재력가들과의 염문을 뿌리고 이들을 이용해 성공의 계단을 밟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어깨 끈이 달려 여성의 두 손을 자유롭게 했던 샤넬 백도, 섹스 심벌 메릴린 먼로가 “나의 유일한 잠옷은 (향수) 샤넬 넘버 5”라고 말해 더욱 유명해진 고혹적인 향기도 모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내 삶을 개척했다. 그 이전의 삶이 싫었기 때문에….” 그가 오늘 날까지 ‘패션계의 전설’로 남은 것은 바로 이 같은 의지와 자기 확신 때문 아니었을까.

○ 그리고 2009, ‘다이내믹 패션 코리아’

‘기생(妓生).’ 술자리에서 웃음을 파는 다소 부정적이고, 퇴폐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존재지만 그들은 화려한 외모에 노래와 춤, 서화에 능한 종합예술인었다. 당대의 유행스타일을 이끌던 패션 리더이기도 했다. 이들이 만들어낸 패션은 옛것과 신문물을 조합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또 천시의 대상이었지만 상당수는 대중의 사랑을 등에 업고 자신들만의 영역과 존재감을 키워냈던 영민한 존재들이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연인으로도 유명한 왕수복(1917∼2003)은 평양기생학교 졸업 후 레코드 대중가수로 성공해 ‘만인의 연인’으로서 인기를 누렸다.

이후 숨 가쁘게 달려왔던 경제 개발 시기를 거쳐 1990년대부터 매스미디어를 통한 대중문화의 파급력이 커지면서 연예계의 ‘아이콘 스타일’ 또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패션전문가 황의건 오피스h 대표는 “199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엄정화는 매번 독특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냈고 2000년대 클래식과 내추럴리즘의 전형을 보여준 김태희, 전지현 등으로 인해 한국 여성들의 화장이 연해지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이어 그는 또 다른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지면서 2000년대 소비자들은 강한 자기 개발 욕구를 갖게 됐고 패션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연출하게 됐다. 자신의 취향대로 패션을 즐기는 ‘믹스 & 매치’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들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노년에도 청바지를 입으며 멋지게 늙어갈 것이다.”

오늘날 ‘미’를 창조하는 이는 바로 당신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올가을 당신만의 ‘에지 패션 스테이트멘트’(개성 있는 자신만의 패션 표현)를 기대해 본다.

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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