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메아리 친 ‘불교 쓴소리’

  • 입력 2009년 8월 19일 02시 55분


17일 전북 남원시 실상사 작은 학교에서 열린 ‘야단법석’ 토론회에서 도법 스님(왼쪽 서 있는 사람)이 혜국 스님(연단 위 오른쪽)의 기조 법어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남원=민병선  기자
17일 전북 남원시 실상사 작은 학교에서 열린 ‘야단법석’ 토론회에서 도법 스님(왼쪽 서 있는 사람)이 혜국 스님(연단 위 오른쪽)의 기조 법어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남원=민병선 기자
■ 남원 실상사 ‘야단법석’

“한국 불교의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합니다. 선방의 스님들은 안락한 절에서 참선만 합니다. 절 주변 주민들보다 풍족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세구민에 앞장서야 할 스님들이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까?”(전북 남원시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붙들고 참선하는 것) 수행이 한국 불교를 이끌어온 힘입니다. 간화선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참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충북 충주시 석종사 혜국 스님)

14∼18일 지리산 자락의 실상사에서 한국 불교의 수행법과 문제에 관한 토론회 ‘야단법석(野壇法席·야외에서 설법을 펴는 것)’이 열렸다. 이 행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전국의 스님과 신도들이 참가해 토론을 벌였다. 기존 법회와 달리 스님과 신도가 나란히 토론한다는 취지에서 법상(스님이 설법하는 높은 연단)을 설치하지 않았다. 17일 무더위 속에서 150여 명이 선풍기 몇 대만 돌아가는 강당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벌인 토론을 기자가 들여다봤다. 강당에 못 들어간 100여 명은 마당에 천막을 치고 폐쇄회로(CC)TV로 토론회를 지켜봤다.

먼저 조계종의 수행법인 간화선이 너무 어려워 대중과 멀어지고 스님들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국 선원 수좌 대표로 참가한 혜국 스님은 기조 법문을 통해 “간화선은 달라이 라마도 칭찬한 한국 불교의 장점”이라면서도 “간화선에만 집착한다는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도법 스님은 “부처님은 자주 모여 대화해야 정법(正法)이 후퇴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간화선은 혼자 수행하다 보니 개인주의로 흘렀다”고 지적했다.

수행법에 대한 문제의식은 불교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전남 순천시에서 온 불자 김학훈 씨(42)는 “절이 군대도 아닌데 스님들이 세납(속세의 나이), 법랍(출가 이후 햇수)을 따지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인도 티베트 등에서 10년 넘게 수행한 전북 익산시 사자암의 향봉 스님은 교단의 치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향봉 스님은 “지난해 한 사찰은 안거 해제비로 1인당 700만 원을 줬다”며 “자기 정진의 대가로 신도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질타했다. 그는 또 “큰 사찰 주지 진산식(취임식)에 정치인과 고위 관료가 찾아오는 걸 보면 불교계가 얼마나 세속화했는지 알 수 있다”며 “일부 주지가 자신의 깨달음을 담아야 할 법어를 아랫사람에게 대신 쓰도록 하는 것은 신도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말했다.

남원=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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