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20선]<13>걷기의 기적

  • 입력 2009년 8월 13일 02시 59분


《“나는 한동안 걸을 수 없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서 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활동인 걷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나는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도시와 자연 속을 혼자 힘으로 걸어가면서 가슴 벅찬 희열을 느꼈다. 기적처럼 다시 찾아온 걷기. 나는 그 기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갑상샘 환자, 다시 걸음마를 배우다

자신이 언제부터 걸음마를 시작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배고플 때 밥숟가락을 떠 입속에 넣는 것처럼 아침에 자고 일어나 욕실로 걸어갈 때 ‘두 다리’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사람도 적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걸을 수가 없게 된다면…. 저자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갑상샘 이상이라는 치명적인 판정을 받은 그 순간부터 나는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갑자기 전혀 다른 세상에 홀로 떨어져버린 것 같았다. 남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작인 걷기가 내게는 하나의 희망, 간절한 소원이 돼버렸다.”

의사는 저자에게 심리적, 신체적 효과가 있는 ‘걷기’를 운동 요법으로 처방해 주었다. 걷기는 저항력을 키워주고, 체내의 독소를 제거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저자는 말한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걷기를 다시 배울 때 저자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발걸음을 겨우 뗐다. 몇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곤 했다. 그는 “끈질긴 피로와 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항상 따라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저자는 걷기를 멈추지 않았고, 체력도 회복했다. 혼자 걷기에도 과감히 도전했고, 좁은 공간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걷기 연습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도서관에 가려고 길을 나선 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고 욕심을 내 목적지까지 걷기 도전에 나섰다. ‘무려’ 35분간의 도보 길이었다. 그는 도서관에 도착해 깨닫는다. ‘이제 완치가 됐구나.’

걸을 수 없다가 걷게 된 저자는 걷기 예찬론자가 된 듯하다. 고전부터 시작해 현대물까지 걷기와 관련된 다양한 책과 연구서들을 인용해 저자는 걷기의 중요성과 가치를 일깨워준다.

“발은 역사와 신화에 많은 자취를 남겼다. 어원이 ‘부은 발’을 뜻하는 오이디푸스나 ‘왼쪽으로 기운 발’을 뜻하는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 ‘절름발이’를 의미하는 그의 할아버지 라브다코스 왕 모두 이와 무관치 않다.”

걷기는 건강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변화시킨다. 벨기에의 오이코텐 협회는 교도소나 수용시설에서 생활한 청소년들이 낯선 나라를 도보로 여행하는 일종의 선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소년 두 명과 인솔자 한 명이 함께 2000∼2500km를 라디오나 MP3플레이어도 없이 3개월 동안 걷는 것이다.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동안 청소년들은 자력으로 숙식을 해결하고, 옳은 길을 선택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무엇보다 자신이 결정한 선택에 따라 발생하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청소년 중 60%가 사회 복귀에 성공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 책엔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걷기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해 걷기에 나섰거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걸으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돕는 등 걷기를 통해 삶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체험담이 펼쳐진다. 등산할 때는 20분마다 물을 몇 모금 마실 것, 피로한 다리를 풀 때는 뜨거운 물보다 차가운 물을 끼얹을 것, 하이킹 전 아침은 든든하게, 하이킹 중 점심은 가볍게 할 것 등과 같은 걷기 관련 지식도 새겨둘 만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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