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지구촌 한인미술 조망하는 기획전 2題

  • 입력 2009년 8월 4일 02시 59분


수난을 넘어서
‘아리랑 꽃씨’展, 아시아지역 동포 모습서 보는 ‘우리’

경계선은 없다
‘미국 속의…’展, 세계화 발 맞춘 다양한 작품세계

《뿌리는 하나지만 호칭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재일조선인(일본), 고려사람(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 조선족(중국). 19세기 중엽부터 자의 반, 타의 반 해외로 이주해 삶의 터전을 일궈낸 한민족의 이름이다. 낯선 땅에서 외국인의 신분으로 혹은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한인 후예 작가들의 삶과 예술을 아우르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9월 27일까지 2전시실에서 마련한 ‘아리랑 꽃씨: 아시아 이주 작가’전(02-2188-6000). 일본 중국 독립국가연합의 한인 작가 31명의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등 180여 점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내내 무관심했던, 그래서 소개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작품을 사각지대 밖으로 끌어낸 전시다.

세계 속의 한인미술을 살펴보는 흥미로운 전시가 또 있다. 서울대미술관에서 16일까지 열리는 ‘For Excellence-미국 속의 한국 작가 11인’전(02-880-9504). 한인 미술애호가들이 설립한 비영리재단인 ‘한미미술재단(KAFA)’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작가를 대상으로 2년마다 주는 상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 경계에 선 사람들

황량한 풍경이다. 숫자가 쓰인 창고 앞에 서 있는 두 남자의 표정을 읽기 힘들다(조양규의 ‘폐쇄된 창고’). 모호한 정체성과 삶의 부조리를 의인화된 개로 상징한 그림도 인상적이다(송영옥의 ‘나는 어디에’).

‘아리랑 꽃씨’전에 나온 재일 한인의 작품은 어둡지만 강렬하다. 1960년 북송선을 타고 간 뒤 생사조차 모르는 조양규를 비롯한 1세대의 작품에선 노골적 차별과 편견에서도 치열하게 버틴 강인한 생존력이 느껴진다. 리얼리즘 작업과 함께 모더니즘을 실험한 곽인식 문승근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곽덕준 등 2세대를 거쳐 3세대 작가의 작품에서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살아 있다. 온갖 품종의 쌀을 늘어놓은 뒤 ‘무엇이 과연 다른가’를 질문하는 김영숙, 남한과 북한 여권을 인쇄한 화장실용 휴지로 설치작업을 선보인 김애란 등이 그들.

이번 전시는 이주민의 자취를 수난의 역사로 조명하지 않는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작가들의 1950, 60년대 작품은 이주자의 모습을 개척자의 건강한 삶으로 형상화했다. 중국 한인 미술의 경우 사회주의의 성과나 민속적 소재를 구상회화로 표현한 작품이 많다.

한편 ‘미국 속의…’전은 아시아적 특성이 아니라 세계미술의 흐름을 드러낸다. 낡은 의자로 명상적 설치작업을 선보인 조숙진, 풍경 사진을 디지털 방식으로 콜라주한 바이런 킴, 개인성 집단성 익명성의 관계를 탐색한 서도호를 비롯해 남윤동, 알리스 박, 민연희, 박정미, 마리아 박, 김제나, 임원주, 이재이 등 한국계 작가들의 다양한 세계를 엿보게 한다.

○ 세계 시민으로 가는 길

‘디아스포라(Diaspora)’는 원래 유대인의 민족적 이산이나 유랑을 뜻하는 용어였지만 이제 현대사회를 해석하는 화두로 폭넓게 사용된다. 해외로 흩어진 한인 작가들의 작품은 세계화 시대 속의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단면을 드러낸다. 두 전시를 찬찬히 감상하다 보면 ‘다문화’ 시대를 맞은 한국이 하루빨리 포용력 있는 사회로 성장해야 할 이유를 쉽게 수긍할 수 있다. 타자의 입장에 서 있는 한인을 바라보면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타자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얻기 때문이다.

‘아리랑 꽃씨’전을 기획한 박수진 큐레이터는 “이 전시는 한민족의 공통성이나 국가 개념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경계에 선 자의 감수성을 접하면서 진정한 공동체를 향한 창조적 문화관을 단련시킬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 간 문턱이 낮아진 시대, ‘그들’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속에도 ‘그들’이 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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