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치인 아줌마들, 춤추며 ‘나’를 찾다

  • 입력 2009년 8월 1일 02시 57분


예술 교육 프로그램인 ‘내 이름은 김숙자, 예술로 날다’가 한국판 ‘엘 시스테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주부들이 7월 28일 경쾌한 음악에 맞춰 리듬감 넘치는 몸짓으로 즐겁게 연습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예술 교육 프로그램인 ‘내 이름은 김숙자, 예술로 날다’가 한국판 ‘엘 시스테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주부들이 7월 28일 경쾌한 음악에 맞춰 리듬감 넘치는 몸짓으로 즐겁게 연습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서울 동작구-중앙대, 저소득층 주부들에게 예술 교육… 이영하 유지인 씨 등 강사로

7월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 예술대학원 뮤지컬 연습장. 팝그룹 ‘아바(ABBA)’의 히트 곡 ‘맘마미아’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아줌마’ 20여 명이 두 줄로 늘어서 팔을 위로 한껏 치켜들었다. 노래가 시작됐다.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 두울∼”을 외치며 리듬을 맞춰 나갔다. 골반을 꺾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관광버스 춤’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들은 음악이 끝나자 환호성을 질렀다. “예전에 놀았던 감이 이제야 나오는 거 같아. 그런데 김 여사도 어디서 좀 놀았나보지?” 다시 음악이 시작됐다. 몸이 익숙해지자 입에서도 절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신나게 춤춰 봐, 인생은 멋진 거야. 기억해. 언제나. 최고의 댄싱 퀸(Dancing Queen)∼.”

○ “나도 내 이름으로 살고 싶다”

‘아줌마 댄싱 퀸’들은 동작구와 중앙대 예술 마에스트로 청년사업단이 주최한 ‘내 이름은 김숙자, 예술로 날다’라는 제목의 예술 교육 프로그램 수강생들. 마에스트로 사업단과 동작구는 관내 저소득층 주부들에게 다양한 문화, 예술 교육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보건복지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단장인 황동열 중앙대 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우리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누구 엄마, 누구 아내라는 타이틀로 소망과 꿈을 포기한 채 살아간다”며 “하지만 이들에게도 ‘송골매’와 ‘산울림’을 따라다니던 소녀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에게 잃어버린 꿈과 이름을 되찾아주자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날 연습에 참여한 손월례 씨(62·서울 동작구 흑석동)는 “20여 년간 식당을 운영하다 최근 일을 그만두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는데, 뮤지컬 덕분에 다시 활력을 찾았다”며 “평생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예술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지만 젊은이들 못지않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 유명인사들이 지도교사

마에스트로 사업단의 강좌는 이론 위주의 문화예술경영 강좌, 미술, 공연실습 등 세 종류다. 가구소득이 도시근로자 월 평균소득의 120% 이하인 주부들을 대상으로 232명을 모집했다. 수강료는 1인당 2만 원.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은 무료다. 7월부터 시작해 화요일마다 수업을 진행하고 12주 뒤인 9월에는 수강생들이 직접 무대에 오르거나 작품을 전시하는 것으로 교육과정이 끝난다.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 수강생들을 직접 지도하며 배우 이영하, 유지인 씨와 방송인 이금희 씨, 소리꾼 장사익 씨도 각 교육과정의 멘터로 참여한다.

유 씨는 7월 28일 열린 공식 개강식에 참석해 수강생들에게 “TV 속에서 연기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늘 행복하다”며 “여러분도 다양한 예술과 함께한다면 항상 즐겁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 한국판 엘 시스테마

이번 프로그램은 한국판 ‘엘 시스테마(El Sistema)’를 목표로 출범했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운영 자금을 지원하는 음악 교육 재단으로 저소득층 자녀에게 무상으로 음악을 가르쳐 마약과 범죄 등으로부터 구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평범한 주민들이 직접 예술공연의 주역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중국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인상 프로젝트’와도 흡사하다. 인상 프로젝트는 장 감독이 5년 5개월에 걸쳐 중국 구이린(桂林)과 항저우(杭州) 등지에서 현지 농민들을 교육해 만든 대형 야외 뮤지컬이다. 황 교수는 “앞으로 복지의 개념이 금전적인 복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문화 복지’로 확대될 것”이라며 “저소득층 주민들도 높은 수준의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겠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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