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대보름날 야광귀 쫓으려 얼개미 걸던 것처럼…

  • 입력 2009년 8월 1일 02시 57분


◇알고/유안진 지음/184쪽·7000원·천년의시작

“새 아가, 대청마루 시계에 밥 줘라/예 아바임!//숭늉대접 올립니다 아바임/오냐, 시계 밥은 줬냐?/예 아바임/아까 전에 진지상 올렸는데, 아직 수저도 아니 드셨사와요.//이런 시절 이런 댁의/새아기가 되어봤으면/아니 아니 오히려 시아비가 되었으면.”(‘시계 밥 줘라’)

전통 민속들이 현대시 속으로 녹아들었다. 서울대 명예교수인 유안진 시인(68)이 재래 풍속들을 시를 통해 새롭게 조명한 신작 시집 ‘알고’를 펴냈다. ‘민속시집’이란 부제가 알려주듯 재치 있고 익살맞은 속담이나 민담, 음양오행, 풍수지리, 조상숭배 등의 고유한 재래 풍속들이 시인의 시선으로 재해석됐다. 시를 통해 음미해보는 민속문화는 한층 생생하고 흥미롭다. 유 시인은 오랫동안 한국 전통문화, 민속 가치의 재발견에 관심을 기울여온 민속학자이기도 하다.

시인은 인사동 골목길의 엿 타령 소리에 “해마다 섣달그믐에는 아궁이에 개엿을 발라서, 상제께 올라간 조왕신의 입에 붙어서 집안일을 미주알고주알 고자질 못하게 했고 신행길의 신부 속눈썹에도 엿물을 발라 부정한 것을 못 보게”(‘엿 먹어라’)했던 옛 풍습을 떠올린다.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는 자린고비 이야기(‘대대손손 고깃국 먹을 비결’) 정월대보름 눈이 밝다는 야광귀를 쫓기 위해 얼개미 등을 걸어두었던 풍습(‘신을 잃고 안경을 샀다’)을 담은 시들은 옛날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처럼 재밌다. ‘최초의 페미니스트’ ‘정당방위’ 등에서처럼 여성이 주변인이자 부차적인 존재가 돼야 했던 가부장적인 문화의 흔적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시인은 서문에 “글로벌 시대를 퓨전식으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 민속은 어느새 아방가르드가 되고 말았다”며 “지난 30여 년 동안 내 학문이던 우리 민속을 시로 재음미해 보는 것은 나의 태생적 촌순이다움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썼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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