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에게 말 걸기 20선]<12>미스터리 박물관

  • 입력 2009년 6월 25일 02시 55분


◇미스터리 박물관/라인하르트 하베크 지음/갤리온

《“그는 이 흥미로운 유물이 ‘제례 용기’라는 딱지를 붙인 채 박물관 창고에서 먼지나 뒤집어쓰게 만들 수 없었다. (중략) 쾨니히는 전 세계 각지의 박물관에 편지를 보내 비슷한 유물이 발견된 일이 있는지 알아봤다. 그리고 그런 유물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쾌재를 불렀다. 물론 대부분의 유물은 주목받지 못한 채 그저 ‘장난감’이라거나 ‘종교의식에 쓰이는 물건’ 혹은 아예 대놓고 ‘용도 미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새로운 발견에 인색한 고고학계

1936년 여름, 폭우가 쏟아지던 날 이라크 바그다드 근처 구릉의 흙이 무너져 내리면서 큰 구멍이 뚫린다. 구멍을 메우려던 인부들은 흙더미 사이로 옛 사람이 살았던 터를 발견한다. 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경 중동 지방을 지배한 고대 국가 파르티아의 신전 터였다.

이라크 국립박물관 팀과 오스트리아 출신 고고학자 빌헬름 쾨니히는 이 유적지에서 특이한 구조를 지닌 항아리를 발견한다. 길이 14cm에 노란색 점토로 만든 타원형 항아리 안쪽에는 주석과 납으로 만든 길이 12cm, 지름 2.4cm의 실린더가 달려 있었다. 실린더를 밀봉하기 위해 역청으로 만든 마개 안쪽으로는 약 11cm 길이의 쇠막대기가 달려 있었다. 쾨니히는 항아리가 배터리와 흡사한 구조라는 데 착안해 알칼리성이나 산성의 용액을 넣으면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78년 독일 힐데스하임의 뢰머 펠리차에우스 박물관은 이 항아리를 그대로 재현한 뒤 발전 실험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파르티아 배터리’는 0.5V의 전기를 생산했다. 박물관 측은 전류를 이용해 은 입상에 얇은 금박을 씌우는 데도 성공한다. 실제로 파르티아인이 살던 지역에서는 금박을 입힌 은제품이 출토된 바 있다.

인도인들이 산스크리트어로 쓴 ‘아가스타 샴히타’에는 “순전한 구리를 물이 스며들지 않는 항아리 속에 넣고 그 입구를 위로 하고서 황산동과 황산염을 넣어준다… 이런 결합을 통해 ‘미트라’라는 힘이 생겨난다”며 7000여 년 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묘사가 상세해 전기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집트 덴데라에 있는 고대 유물인 하토르 신전 벽에는 전기분해 장치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상형문자와 그림 등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고고학 저술가인 저자는 “학계의 ‘대가’들은 기존 학설을 벗어나는 유물이나 실험 결과를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며 “학계가 이런 유물들에 대해 내놓는 답은 ‘장난감’ ‘컬트 현상’ ‘부활의 상징’ 같은 부정확한 설명뿐”이라고 말했다. 파르티아의 항아리나 하토르 신전의 부조 발굴에도 불구하고 학계는 여전히 19세기 이탈리아 물리학자 알레산드로 볼타의 갈바니 전지를 최초의 전지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자연과학의 모든 연구 가능성을 활짝 열어 두어야만 합니다. 처음부터 기묘한 사안을 헛소리로 여기지 말고 문제를 문제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오스트리아 예술사학자 루돌프 디스텔베르거가 남미에서 나온 기원전 500년경 조각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조각에는 태아의 탄생과 발달 과정이 묘사돼 있다. 현미경이 없는 시대였는데도 상당히 정확하고 상세해 이런 묘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고고학 저술가인 저자는 이 유물들을 포함해 행성의 운행 궤도를 정밀하게 분석해내는 기원전 100년경의 연산 기계, 근대 비행기의 구조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대 이집트의 나무 모형 등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은 유물 13가지를 제시하며 유물에 얽힌 사연과 관련 실험 결과, 학계의 논쟁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이 유물들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