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번역-유통경로 보면 동아시아 문화교류 보이죠”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김문경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가 삼국지의 동아시아 유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김문경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가 삼국지의 동아시아 유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성대서 5년간 강의 김문경 교토대 교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나오기 전에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라는 책이 있습니다. 삼국지평화는 문장이 거칠고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은 초기 삼국지입니다. 14세기 원나라 때 나온 이 책은 현재 일본에만 있어요. 중국에선 심심풀이로 읽고 버렸지만 책을 들여온 일본에선 (문화선진국인) 중국 책이라고 귀하게 여긴 것이죠. 그런데 삼국지평화가 최초로 언급된 문헌은 고려 상인의 베이징(北京) 무역 기록을 담은 중국어 회화교본인 ‘노걸대(老乞大)’입니다. 이렇듯 삼국지 유통만 봐도 동아시아 문화 교류를 읽을 수 있습니다.”

22∼25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서 ‘삼국지 특강’이 열린다. 동아시아의 책과 지식 유통의 문화사를 연구해 온 재일교포 2세 김문경 교토(京都)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57)의 강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행 중인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5년 동안 성균관대에서 강의하기 위해 최근 내한한 그를 23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2005∼2007년 동양학 연구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의 첫 외국인 소장을 지냈으며 삼국지 수호지 등 중국소설 전문가다. 김 교수는 삼국지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문화사를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 “중세 이후 인적 교류가 활발했던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는 과거 (한자로 된) 책을 중심으로 교류가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14세기 나관중이 중국에서 편찬한 삼국지연의가 한국과 일본에 유입된 양상은 사뭇 달랐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삼국지연의가 17세기 에도시대 초기에 일본어로 완역되고 책으로 출판됐습니다. 조선의 경우 16세기 초에 책이 유입됐으나 근대적 활자본으로 번역돼 나온 것은 20세기 들어서였습니다. 출판문화의 차이나 일본 문자와 한글 보급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는 중국인이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여기는 관우의 묘(廟)를 세우는 과정도 조선과 일본이 달랐다고 말했다. “조선은 임진왜란 때 원군으로 온 명나라 군대가 관우 묘를 세우라고 요구해 마지못해 세웠지만 일본의 경우 17세기와 19세기에 일본에 온 중국 상인들이 항구에 묘를 세웠습니다.” 그는 한국과 일본 작가들이 삼국지를 새롭게 재해석한 책을 내놓는 것과 달리 중국에선 삼국지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재해석하지 않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연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분야별 학자들 간의 심도 있는 공동연구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