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10>건강한 다문화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

  • 입력 2009년 6월 17일 03시 00분


서울 성북구 성북1동 ‘베들레헴 어린이집’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권오희 수녀님과 선생님들로부터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미래의 꿈을 키워 나가고 있다. 변영욱 기자
서울 성북구 성북1동 ‘베들레헴 어린이집’의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권오희 수녀님과 선생님들로부터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미래의 꿈을 키워 나가고 있다. 변영욱 기자
2부. 열린 문화, 국경을 허문다

친구처럼 엄마처럼… 막막한 그들의 울타리가 되다

《한국 국회의원을 꿈꾸는 필리핀 출신의 여성, 한국 최고의 네팔음식 체인점을 꿈꾸는 네팔 출신의 30대 남자, 연극 공연에 뛰어든 결혼이주여성들, 전국 곳곳에서 다문화자녀 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수녀님과 선생님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모국의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베트남인 도슨트들, 청소년 국가대표 축구팀을 위해 헌신하는 러시아 출신 축구선수, 문화와 문화의 소통을 추구하는 다문화도서관 사람들, 해녀를 꿈꾸는 제주의 필리핀 출신 며느리…. 올해 2월 시작된 연중기획 ‘달라도 다함께-글로벌 코리아, 다문화가 힘이다’에 등장한 사람들의 면면은 이렇게 다양하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이들에겐 공통된 꿈이 있다. 함께하는 사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다. 2부를 마치며 그동안 등장했던 사람들 가운데 건강한 다문화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7명을 다시 만났다.》

■김창모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 소장

생활민원… 통역… 외국인 주민들의 ‘사랑방’

“잘사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출신으로 외국인을 구분하는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차별 없는 거주를 위한 제도도 더 필요합니다.”

2007년 9월. 추석을 앞두고 경기 안산시에서는 10여 개국 외국인 근로자와 고국에서 온 가족들의 상봉행사가 열렸다. 김창모 소장(48·당시 외국인복지지원과장·사진) 등 안산시 공무원들은 이들을 위해 정성껏 식사를 차렸다. 나라와 종교 특성을 고려한 뷔페식 성찬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파키스탄에서 온 한 가족이 식사를 거부한 것이다. 이슬람의 ‘라마단’ 기간이기 때문이었다.

김 소장은 당시 큰 충격을 받고 다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경험은 국내 첫 ‘외국인주민센터’ 운영의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2008년 3월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문을 연 뒤 김 소장을 비롯해 30명 가까운 직원들은 휴일 근무를 마다하지 않으며 외국인들의 손발을 자처했다. 1년이 넘은 지금 외국인주민센터는 시시콜콜한 생활민원을 해결해 주는 ‘사랑방’이자 통역, 취업, 비자 문제를 도와주는 ‘임시정부’로 자리 잡았다.

안산=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이철호 부산 아시아공동체학교 교장

어울려 사는법 배우는 40명의 꿈 ‘무럭무럭’

“외국과의 교류가 잦은 항만도시 부산은 다문화가정의 증가 속도가 빠릅니다. 그런데 부산 다문화가정 자녀가 일반 학교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고민을 시작했죠.”

후배와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2006년 다문화가정을 위한 초등과정 대안학교인 아시아공동체를 만든 이철호 교장(47·사진). 재정적인 어려움 등으로 몇 차례 고비도 있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 이주노동자 부모를 둔 자녀, 한국인 아버지와의 재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온 자녀 등 40여 명과 함께 꿈을 키워 나가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다문화가정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접했을 때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 등을 돌리지 말

고 공감할 수 있을때까지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교육당국에서 아시아공동체학교의 인가를 받은 뒤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이 그의 포부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필리핀어 통역사 돈나벨 카시퐁 씨

알아듣기 어려운 병원 통역까지도 ‘척척’

서울 동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필리핀어 통역사로 일하는 돈나벨 카시퐁 씨(37·사진). 한국 생활 9년째지만 처음 한국 생활에서 힘들었던 것은 몸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 의사와 말이 통하지 않는 점이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학교에 다닐 때엔 알림장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고 학교 교사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점이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역봉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다문화가정에 도움이 된다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그런데 요즘 그를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 생겼다.

“남편을 잃고 아들을 혼자서 키우는 분이 있는데, 남편이 사망하자 시댁에서 전셋돈과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남남이 되어 버려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지 못해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그는 다문화가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활성화되길 바라고 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 베들레헴 어린이집 권오희 수녀

다문화 자녀 합숙교육… 부모들 취업 돕기도

서울 성북구 성북1동 베들레헴 어린이집에 가면 일단 3가지 사실에 놀라게 된다. 합숙아동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간. 사회적 편견과 달리 밝고 친절한 아이들 미소. 그리고 한없이 온화할 줄 알았던 권오희 수녀의 강단 있는 눈빛이다.

권 수녀는 2003년 어린이집을 열면서 갈 곳 없는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관청을 포함한 여러 곳을 다니며 발품을 팔아 왔다. 아이들 부모의 생계 문제도 권 수녀가 돌봐야 할 영역이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이주여성 3명이 1월부터 국회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게 된 것도 권 수녀가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요청한 덕분에 성사됐다.

현재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포화상태에 이른 공간 문제다.

“다른 것 다 필요 없습니다. 넉넉한 것은 바라지도 않고 최소한 아이들을 억지로 내보내는 상황만 오지 않길 바랍니다. 그게 그리 큰 욕심일까요.”

권 수녀의 앙다문 입술. 그 강단은 다 이유가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김영경 광주새날학교 교무실장

배움 목마른 35명 가슴에 희망의 싹 틔워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여성들이 마음으로 고마움을 전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5월 스승의 날에 아이들에게 편지를 받

았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어요.”

2007년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오면서 다문화가정을 위한 대안학교인 광주새날학교에서 교사로 자원봉사를 시작한 김영경실장(50·사진). 고마움도 많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을 보고 해결해 주지 못할 때가 가슴아프다. 한창 배워야 할 나이에 엄마를 따라 돈을 벌러 가야 한다며 학교를 그만둘때 교사로서 어떻게 해줄 수 없어 안타까울때가 많다. 김 실장은 “다문화를 우리 사회에 무리

하게 편입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3월 광주지검과 범죄피해자예방센터, 대불대에서 다문화가정 자녀 글쓰기대회를 열었는데 새날학교 아이들 전체 35명이 참가해 모두 전기밥솥을 상으로 받았다.

“학용품을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문화 가정에서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밥솥을 줘서 정말 기뻤어요.”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전만길 전국다문화가족지원센터협회장

엄마품 그리운 결혼이주여성들의 ‘친정엄마’

“우리말과 문화를 가르치는 것에서 나아가 자녀 양육과 경제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터전 마련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충북 옥천한국어학당 대표에서 4월 출범한 전국 100개 결혼이민자센터 모임인 ‘전국다문화가족지원센터협회’ 초대 회장이 된 전만길 씨(51·사진). 2004년 3월 고향인 옥천에 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해 옥천한국어학당을 열면서 이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방 한 칸을 빌려 9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강의실 4개와 실습실 등을 갖추고 300여 명의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 회장은 “시설과 인력 등 모든 것이 열악했고 외국인에 대한 편견도 있었지만 배움에 대한 이들의 열정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냈다”고 회고했다. 지금은 전국 지자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벤치마킹을 할 정도다.

전 회장은 “결혼이주여성의 경제 자립을 위한 ‘자활공동체상설작업장’ 마련과 다문화 2세를 위한 장학재단 및 대안학교 설립, 전국다문화센터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 등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옥천=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박봉수 인천평생학습관 한국어 강사

한국어 가르치는 다문화 가정 주부의 ‘대모’

남편과 함께 다문화가정을 위한 종합복지관을 짓고 싶어 하는 박봉수 씨(45·사진)는 인천지역 결혼이주여성들 사이에서 ‘대모’로 통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산업연수생을 위해 통역 자원봉사를 한 것이 인연이 돼 2002년부터 다문화가정 주부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는 외국 여성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는 박 씨. 하지만 남편이나 시부모와의 갈등 때문에 이혼을 하거나 가출하는 이주여성을 보면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는 “다문화가정의 가장 큰 갈등은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라며 “특히 시부모를 대상으로 며느리 나라의 문화 교육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박 씨는 또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뮤지컬이나 영화 등을 통해 다문화를 이해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키워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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