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에게 말 걸기 20선]<1>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 입력 2009년 6월 9일 02시 54분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조유전 외 지음/황금부엉이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분명 선사시대부터 전개되면서도 명쾌하게 밝혀진 것이 별로 없고 백가쟁명 격의 주장만 있었을 뿐이다. 유적의 발굴조사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고, 우리의 고대 역사가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그대로가 아님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발굴조사의 자료를 통해 이러한 역사의 쟁점과 진실에 접근해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과 욕심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구석기~조선 유적 발굴현장

1986년 경북 경주시 용강동의 폐고분을 발굴 중이던 경주고적발굴단은 무덤 내부의 흙을 제거하다가 남근을 닮은 기묘한 유물을 발견했다. 조사원들이 망측스럽다며 유물의 흙을 걷어내자 목이 떨어져 나간 여성 인물의 토용(흙으로 빚어 구워 만든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발굴사상 최초로 발견된 인물 토용이었다. 발굴단은 이 토용의 사라진 목 부분을 찾다가 남성 토용 15점, 여성 토용 13점을 찾았다. 청동으로 만든 12지상 중 7점도 출토됐다. 여성 토용은 백토(빛깔이 희고 부드러우며 고운 흙)를 바르고 붉게 칠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여성을 생생히 보여줬다. 마주 보고 대련하는 형태의 남성 토용은 고대의 무술 문화를 엿보게 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개무덤이나 말무덤으로 치부된 폐고분에서 신라의 중요한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이 나온 것이다. 용강동 고분은 발굴 전 사전조사에서도 별다른 가치가 없는 무덤으로 생각돼 짧은 시간에 발굴을 끝내려던 곳이라 놀라움이 더했다.

용강동 고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지문도 발견됐다. 당시 동아일보가 치안본부(경찰청) 감식과 계장과 함께 말 토용의 안장 안쪽에서 나온 당대 도공의 지문을 분석한 결과 남성의 오른손 집게손가락 지문으로 밝혀졌다. 지문은 소용돌이 형상이었으며 이는 한국인의 45%에서 나타나는 모양이다.

저자인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한국 고고학의 산증인이다. 그는 1971년 무령왕릉 발굴 조사 이후 30여 년간 경주 황룡사터, 감은사터, 황남대총 등 주요 발굴 현장을 지켰다. 실제 발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생생한 현장 이야기가 고고학을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친근하고 신비한 수수께끼의 세계로 만들었다. 경주 안압지, 서울 풍납토성, 남한산성, 천마총, 백제금동대향로, 무령왕릉 발굴 등 30여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2000년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가 일본 미야기 현의 유적 발굴 현장에서 가짜 석기를 파묻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도했다. 1981년 이후 20만, 40만, 50만, 70만 년 전 구석기 유적을 잇달아 발굴한 후지무라의 성과가 조작된 것임이 드러났다. 일본 구석기 역사는 70만 년 전에서 7만 년 전으로 떨어졌다.

저자는 후지무라의 자작극이 한국의 구석기 유적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라고 본다. 1978년 고고학계를 뒤흔든 경기 연천리 전곡리 구석기 유적의 27만 년 전 아슐리안 주먹도끼(찍고 자르는 기능이 함께 있는 도끼)다. 그때까지 세계 고고학계는 동아시아 구석기 역사에는 주먹도끼 문화가 없다고 봤다.

그런데 고고학을 전공한 미국 공군인 그렉 보웬이 전곡리 유원지를 찾았다가 범상치 않은 돌을 발견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중앙박물관 등 기관 6곳이 합동 조사를 벌였고 당시 내로라하는 고고·미술사학자 20여 명이 총출동했다. 구석기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미국 버클리대 존 데즈먼드 클라크 교수가 한국을 찾아 주먹도끼의 연대를 26만∼27만 년 전으로 추정하면서 한국의 구석기 역사는 국제적으로도 공인받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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