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스무살 슬픈 청춘 더없이 외로웠다

  • 입력 2009년 5월 30일 02시 59분


◇내가 가장 예뻤을 때/공선옥 지음/304쪽·1만 원·문학동네

1980년대 초반 광주. 소녀들은 가장 예쁜 스무 살 무렵을 보내면서도 청춘을 즐기지 못한다. 암울한 시대 낭만을 만끽하는 것은 사치였을까. 일본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구절처럼 말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주위 사람들은 숱하게 죽었다/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었다…내가 가장 예뻤을 때/나는 너무나 불행했고/나는 너무나 안절부절/나는 더없이 외로웠다”(‘내가 가장 예뻤을 때’)

소설가 공선옥 씨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블로그에 4개월간 연재했던 신작 장편소설을 책으로 묶어냈다. 이바라기의 동명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소설은 “저희들이 얼마나 어여쁜지도 모르고, 꽃향기 때문에 가슴 설레면 그것을 무슨 죄나 되는 줄 알고, 그럼에도 또 꽃향기가 그리워 몸을 떨었던” 그 시절 청춘들을 불러낸다.

얼결에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참가한 5·18민주화운동 도중 경애가 어디선가 날아온 유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죽는다. 그 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수경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다. 뇌일혈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충격을 받고 종적을 감췄던 승희는 임신한 채 돌아와 미혼모로 살아간다. 해금은 가난한 노동자 환과 첫사랑을 나누지만 두 사람은 현실의 제약을 이기지 못하고 아픔을 겪는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고 가슴 먹먹한 아픔을 겪으며 보내야 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비애감을 더한다. 봉제공장에 위장 취업했다 감옥에 가게 된 대학생 친구 영금,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독재정권에 반대하다 군홧발에 짓밟힌 승규…. 소설 속 누구에게나 시대가 남긴 흠집과 삶에서 받은 상처가 하나 둘씩 남겨져 있다. 하지만 작가는 살아남은 자들이 꿋꿋하게 제 몫의 삶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담담히 그려내 눈물겨운 이 청춘을 위무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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