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박물관 100년의 사람들]<10·끝>지건길 국립중앙박물관 前관장

  • 입력 2009년 5월 14일 02시 57분


“30년전 부여박물관 누수 피해 악몽
‘용산’ 건축땐 방수공사 직접 지휘”

2005년 높이 13.5m의 국보 86호 경천사 10층 석탑이 새로 개관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석탑이 100년 유랑생활을 마치는 날이기도 했다. 경기 개풍군(현 개성) 경천사에 있던 석탑은 1907년경 일본 궁내부 다나카 미쓰아키 대신이 탑을 해체해 도쿄로 반출했다. 반대 여론이 일어나면서 석탑은 1918년 한국으로 다시 왔으나 경복궁 회랑에 방치됐다. 1960년 탑을 복원해 경복궁에 전시했으나 대리석 재질이어서 풍화와 산성비에 훼손됐다. 1995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탑을 해체보수하기 시작했고 10년 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립해 제 모습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중앙홀에 설치된 경천사 석탑은 관람객이 박물관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석탑 위까지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95년 건물로 쓰던 중앙청이 철거된 뒤 용산 시대를 다시 열 때까지 경복궁 내 지금의 국립고궁박물관 건물에서 10년간 개관을 준비했다. 이 시기 용산 박물관의 기틀을 마련한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66)을 박물관 유병하 전시팀장이 만났다.

유=1983년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 때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청 개관(1986년) 준비 작업을 도맡았는데 관장(2000∼2003년) 때는 용산 개관에 힘을 쏟으셨습니다.

지=집짓기 위해 관장 생활을 했죠. 3년이 30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고민 끝에 고고, 미술 유물의 상설전시를 보완해 관람객들이 역사적 맥락에서 문화유산을 이해하도록 문헌 기록과 설명을 대폭 보강한 역사관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물도 무서운 적이었어요. 1970년대 말 부여박물관장 시절 전시실 곳곳에 큰 구멍이 뚫려 비가 다 샜죠. 일본인 관람객들이 많이 찾았는데 식은땀이 나고 창피했어요. 그래서 용산 박물관 건축 때는 체면 불고하고 헬멧 쓰고 옥상에 올라가 방수 처리를 감독했습니다.

경복궁 박물관으로 출근해 결재 업무를 처리하곤 곧장 용산 현장으로 건너가는 것이 지 전 관장의 일과였다. 그는 “2003년으로 무리하게 잡은 개관 일정이 2005년으로 미뤄지면서 예산 증액을 요구하다가 예산담당 국장에게 예산을 더 요구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각서까지 써야 했다”고 말했다.

박물관이 들어설 곳에 있던 미군 헬기장 이전도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그는 헬기장 터를 물색하기 위해 뚝섬, 용산, 노량진 역사 부근, 반포 둔치, 노들섬을 헤맸지만 협의는 매번 원점으로 돌아갔다. 헬기장 이전 문제는 박물관이 개관하기 불과 5개월 전인 2005년 5월(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 시절)에야 해결됐다.

유=경복궁, 부산, 남산, 덕수궁, 다시 경복궁, 용산까지…. 한국 박물관 100년사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너무 많은 곳을 전전한 것 같습니다.

지=박물관 역사가 일제강점기, 6·25전쟁의 한국 격변기 역사와 맥을 같이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개관을 준비하며 감격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2003년 국보 제246호 대보적경(大寶積經) 등 국보 4점과 보물 20여 점 등 주옥같은 문화재를 기증한 ‘성문종합영어’의 송성문 씨(68)를 잊지 못합니다. 베스트셀러 참고서로 번 돈으로 산 수준 높은 컬렉션을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고마워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기증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을 정도로 나서려 하지 않은 분입니다.

지 전 관장은 1993∼1997년 경주박물관장 때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종합조사를 벌여 25t 정도로 추정됐던 신종의 정확한 무게를 18.908t으로 처음 밝혀냈다. 그는 1993년 신종의 보호를 위해 타종을 중단했다. 매년 말 자정에 신종을 쳐온 터라 비난이 빗발쳤다. 종은 치기 위해 만든 것이고 쳐야 생명이 오래간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1300여 년 된 종을 자꾸 치면 수명이 단축된다”며 “문화재로서의 종은 치는 종이 아니라 보는 종”이라고 말했다. 현재 관람객은 신종 앞에서 1시간마다 녹음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지=사회교육 프로그램이 드물던 1993년 경주박물관대학을 처음 열었습니다. 자리를 다 채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신청 첫날에 마감돼 놀랐습니다. 대구 포항 부산 울산, 심지어 진주에서도 왔어요.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지 전 관장은 2000년 국립박물관에 자원봉사 도슨트(전시 안내인) 제도(80명)를 처음 도입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자원봉사 도슨트는 500명에 이른다. 그는 “박물관은 유물의 전시뿐 아니라 유물을 어떻게 쉽고 친숙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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