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트레킹]대구 비슬산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붉디붉은 진달래 군락은 어디로 갔나?” 등산객들이 비슬산 정상인 대견봉(1084m)에서 누렇게 변해버린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 하산하고 있다. 비슬산은 5월 초까지 진달래 군락이 장관을 이루지만 올해는 날씨가 따뜻해 진달래가 일찍 져 버렸다. 사진 제공 알파인뉴스
“붉디붉은 진달래 군락은 어디로 갔나?” 등산객들이 비슬산 정상인 대견봉(1084m)에서 누렇게 변해버린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 하산하고 있다. 비슬산은 5월 초까지 진달래 군락이 장관을 이루지만 올해는 날씨가 따뜻해 진달래가 일찍 져 버렸다. 사진 제공 알파인뉴스
내려올 때 보았네… 봄의 뒷모습

대구 달성군의 비슬산(琵瑟山)은 진달래 명산으로 손꼽힌다. 전남 여수시의 영취산 진달래도 유명하지만 산사람들은 진달래 군락이나 산세가 비슬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비슬산은 예로부터 4월 말에서 5월 초에 핏빛 진달래로 물들었다. 붉디붉은 진달래 군락을 내려다보노라면 그 속에 빠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 유가사∼정상∼휴양림 5시간 코스

‘비슬’이란 지명은 비파 비(琵), 큰 거문고 슬(瑟)자에서 보듯 정상의 바위 생김새가 신선이 앉아 비파를 켜는 형상이라 해서 붙여졌다. 신선의 비파를 훔쳐보는 마음으로 참꽃(‘진달래’를 ‘개꽃’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에 물들고픈 마음으로 2일 비슬산에 올랐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해 5월 햇살의 따사로움은 잠시 잊었다. 등산객들은 “이런 날이 산에 오르기 좋다”며 반겼다.

유가사에서 시작해 정상인 대견봉에 올라 대견사지를 거쳐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오는 코스.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정상에 선 뒤 진달래 카펫을 밟으며 내려오는 고진감래의 산행 길이었다.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5시간 안팎이면 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정상(해발 1084m)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작은 바위들이 널린 좁은 산길을 오르니 이내 숨이 가빠졌다. 함께한 이들은 중간중간 나무에 기대 높은 곳을 응시했다. 나무들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조금만 지나면 그 자태를 선보일 진달래를 상상하는 듯했다. 앞서 가던 이는 “힘들어도 올라갈 때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올라갈 때 발은 흙을 밟지만 눈은 하늘을 보게 된다는 것. 하늘을 보는 이유는 하늘과 맞닿은 곳에 내가 산을 올라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면 수줍은 새색시처럼 붉은 얼굴을 가린 채 나를 기다릴 진달래…. 그래서 많은 이들은 산은 가슴으로 오르고 무릎으로 내려온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 1084m 대견봉엔 바람 이긴 진달래

한 시간 정도를 오르니 도성암이 나왔고 다시 1시간 더 가니 정상 대견봉이 멀리 보인다. 양옆으로 진달래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람은 불었지만 줄기와 가지만 흔들릴 뿐 꽃잎은 휘날리지 않았다. 정상에 서니 바람은 더욱 세차게 몰아쳤다. 진달래들은 혼자 외로이 피어 있는 법이 없었다. 수많은 진달래가 무리를 이뤄 모진 바람을 이겨냈다.

정상을 지나 내려오는 길. 잔뜩 기대했던 진달래 군락지의 색깔이 흐렸다. 5월도 채 되지 않아 모두 져버린 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한창 만개할 때였지만 올해는 너무 일찍 더워져 4월 하순 반짝 피고는 말았다. 아쉬움 때문일까. 하산 길은 더욱 더뎠다.

하산 길에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물었다. “참꽃 많이 피었어요?” 이들은 모두 넓은 산등성이에 활짝 핀 진달래를 꿈꾸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의 희망을 꺾을 순 없었기에 웃으며 말했다. 정상에 가면 바람을 견디고 있는 수줍은 꽃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대구=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촬영: 동아닷컴 편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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