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48>子欲居九夷러시니 或曰, 陋커니 如之何잇고…

  • 입력 2009년 4월 28일 02시 55분


공자는 중국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고 傷心하여 九夷 땅에 가서 살고자 했다. 누군가가 그곳은 중국과 문화가 달라 누추할 터인데 어찌 하겠느냐고 물었다. 공자는 道로 인도할 사람만 있다면 道가 행해질 것이기에 그곳도 언제까지 누추할 리 없다고 대답했다. ‘논어’ ‘子罕(자한)’편의 이 章에서 공자는 중국의 혼란상에 傷心하면서도 어디서든 道가 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信念을 내비쳤다. 傷心과 信念의 交錯(교착)이 묘하다.

양나라 黃侃(황간)은 九夷란 樂浪(낙랑) 高麗(고려) 倭人(왜인)을 가리킨다고 했으나 수긍하기 어렵다. 널리 동방의 지역을 의미하는 말로 보면 좋다. 陋는 鄙陋(비루)함이다. 如之何는 방법이나 행위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어투다. 何陋之有는 何有陋를 도치시켜 강조하는 어법이니, 같은 구형의 何難之有(하난지유)도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이 章은 당나라 劉禹錫(유우석)이 「陋室銘(누실명)」에서 “남양에는 諸葛孔明(제갈공명)의 초가집, 서촉에는 揚雄(양웅)의 정자가 있었나니, 공자는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했도다”라고 인용함으로써 덕 있는 사람은 누추한 집에 살더라도 향기를 뿜는다는 뜻을 나타내게 됐다. 허균도 ‘누실명’을 지어 “내 마음 고요하고 이 몸 편하거늘, 누가 누추하다 하는가” 하고는 공자의 이 말로 매듭지었다. 章의 일부 뜻만 끊어다 쓰는 斷章取義(단장취의)의 일종이다. 하지만 心安身便(심안신편)의 거처라면 누추해도 高臺廣室(고대광실)이 부럽지 않다는 정신 경계를 잘 드러내지 않았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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