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한식 세계화’나선 요리사 2인

  • 입력 2009년 4월 10일 02시 55분


웨스틴조선호텔 이민 조리총괄 - 정식당 임정식 대표

불고기- 비빔밥-김치만 한식인가

백김치 양갈비, 미역 파에야 어때

《‘한식(韓食).’

풀어 말하면 한국 음식.

외국에서 한식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것은 김치, 불고기, 비빔밥이지만 이 음식만을 한식이라고 하기에는 우리에겐 보여줄 것이 너무나 많다.

한식이란 이 짧은 단어가 아직 많은 외국인에게 생소한 이유도 어쩌면 이 때문일지 모른다.

한식은 한마디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다채롭고 미묘하며 고차원적인 미각 예술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한식의 맛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전하고 있는 두 요리사가 미식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내 프렌치 레스토랑 ‘나인스 게이트’의 조리총괄 이민 상무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퓨전 한식 레스토랑 ‘정식당’ 대표이자 주방장인 임정식 요리사가 그 주인공. 이들이 만드는 것은 전통 한식이 아니다. 한국 식재료를 사용하되,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존 한식의 틀은 깬 새로운 요리다.

○ 한식적 양식-양식적 한식에 도전

이들을 만난 것은 2일 오후, 점심 영업이 마무리되고 난 뒤 나인스 게이트 홀에서였다. 이곳의 통유리창 밖으로는 고종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세웠다는 환구대가 눈에 들어온다. 눈으로는 한국적 정취를 즐기며 혀로는 프랑스 요리를 음미할 수 있는 것.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나인스 게이트가 85년 가까이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이 이색(二色)적인 공간에서 만난 두 요리사는 이날의 공간만큼이나 이색(異色)적인 요리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23년 경력의 서양 요리 전문가인 이 상무는 몇 년 전부터 한국 식재료를 활용한 프랑스 요리를 개발해왔다. ‘백김치를 곁들인 양갈비’, ‘단감과 함께 구워낸 푸아그라’, ‘멸치 다시마 육수(장터국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와 매생이를 활용한 홍도미 구이’ 등이 대표 메뉴.

4년 전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졸업하고 올 초 정식당을 연 임 대표는 이 상무보다 한참 후배인 신참 요리사. 그러나 한국 식재료를 활용해 만드는 요리의 독창성 면에서는 이 상무에게 뒤지지 않는다. ‘꿀에 조린 미삼(尾蔘) 혹은 머루를 넣어 만든 푸아그라 무스’, ‘미역소스와 깍두기를 곁들인 파에야(스페인식 쌀요리)’, ‘명이나물에 싸먹는 돼지보쌈 스테이크’, ‘당귀가 들어간 아이스크림 디저트’ 등 듣는 것만으로도 동서양의 맛 조합이 궁금해지는 메뉴가 한가득이다.

좋은 인상의 눈가 주름이 여럿인 48세의 중견 요리사(이 상무)와 한 레스토랑의 대표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르바이트생이 아닐까 싶은 앳된 얼굴의 31세 요리사(임 대표). 나이도, 경력도 전혀 다른 이 두 사람이 ‘한식적 양식’ 혹은 ‘양식적 한식’이라는 공통의 목표에 도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부터 식재료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우리 땅에서 이렇게 좋고 다양한 식재료가 나는데 이걸 서양요리에 어떻게 잘 활용할 순 없을까 하고요.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양식에도 한국적인 에센스를 가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이 상무)

“레스토랑으로서 돈을 벌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과 달라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한국 식재료는 그 어떤 재료보다 손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어요. 단, 이걸로 남들과 다른, 하지만 누구나 맛있다고 느낄 그런 요리를 만들고 싶었어요.”(임 대표)

○ 다양성 최고-한식의 한계는 없다

이날 인터뷰를 계기로 처음 만난 두 선후배 요리사는 ‘세계에서 통하는 한식’을 주제로 열정적인 대화를 나눴다.

“한국 고객들은 물론이고 나인스 게이트 고객의 20%가량을 차지하는 외국인에게도 ‘한국적 양식’의 인기가 아주 좋아요. 백김치와 양갈비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동서양 음식의 ‘맛 궁합’에 다들 놀라워합니다.”(이 상무)

“정말 그래요. 제가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하면서 한동안 미국과 유럽의 유명 레스토랑을 돌면서 미식 여행을 다녔어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일해보기도 하고 스페인,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 쪽 식당에서도 일해봤어요. 거기서 얻은 제일 큰 수확도 ‘요리엔 제한이 없다’라는 거였어요.”(임 대표)

“한식의 세계화를 말하지만 막상 외국 한식당에 가보면 주요고객은 유학생이나 관광객 같은 한국 사람이 대부분이죠. 외국인에게는 한식의 벽이 너무 높은 겁니다. 한식에 대한 개념(고정 관념)을 깨야 돼요. 전통도 좋지만 외국 고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이 상무)

“네. 그런 면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가 독일이에요. 아주 유명한 자기네 나라 음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좋은 음식을 폭넓게 받아들여서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뽑아냈더군요. ‘한식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전 그런 말이 오히려 한식이 뻗어나갈 길을 방해하는 것 같아 답답해요. 제발 제한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레스토랑들도 ‘뉴 아메리칸’, ‘모던 프렌치’ 형태가 많잖아요.”(임 대표)

“젊은 요리사들이 한국 음식을 많이 프로모션해줘야 해요. 해외 셰프들에게 자꾸 우리나라 식재료와 조리법을 보여줘야 합니다. 갈비라면 갈비를 다루는 테크닉이나 소스를 현지의 송아지 고기 등에 접목해 활용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거죠. 이렇게 점차 한식의 묘미를 알려나가야 합니다.”(이 상무)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해봤지만 한국처럼 식재료가 다양한 나라가 없었어요. 음식점만 해도 순대국밥집, 보쌈집, 부침개집…. 정말 이렇게 세분된 곳이 없죠. 철마다 제철 요리도 따로 있고. 정말 다양성 면에서는 최고인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을 다 녹여서 2010년에는 미국 뉴욕에 정식당을 열 계획이에요. ‘뉴 코리안(새로운 한식)’이 뭔지 보여주고 싶어요.”(임 대표)

“영어를 할 수 있는 한식 주방장이 있는 한식당이 나오길 바라요.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하되, 한국의 맛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을 지키세요. 그리고 이를 제대로 표현하고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경쟁이 가능하죠. 임 대표 같은 후배 셰프가 많이 나와 주면 좋겠네요.”(이 상무)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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