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22명의 원어민 예비번역가에 거는 기대

  • 입력 2009년 4월 6일 02시 53분


“로버트 프로스트는 ‘A언어를 B언어로 번역했을 때 사라지는 것이 시’라고 정의했습니다. 번역가로서 그 사라져 버린 것들을 벌충해 말할 수 있다면 그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2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문학번역원의 한국문학번역아카데미 특별·심화과정 개강식.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한국어 등 7개 언어권에서 뽑힌 68명의 수강생이 첫 강의로 열린 유성호 한양대 교수의 ‘한국현대문학의 흐름’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 중 원어민 외국인은 22명이었다. 수강생들은 1년에 24주 번역 실습, 작가와의 대화 등을 교육받는다.

페리 밀러 씨(29)는 미국 교포 1.5세대로 동양학을 공부하다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 새터민 문제에 먼저 관심을 가지게 된 경우.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그는 “한국도 다문화사회로 변해가는 만큼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이 녹아든 문학작품이 늘고 있다”며 “한국문학 번역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사회·국제적 소통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대에서 한국학을 전공한 밴 잭슨 씨(29)는 프리랜서 번역가. 출판사 등에서 다양한 번역 일을 해 온 그는 “영국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인지도는 제로에 가깝다. 서점에서 파는 책도 없고 대학 도서관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수준”이라며 “수요가 많든 적든 필요할 때 찾아 읽을 수 있는 번역 작품이 구비돼 있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니콜라이 프로토포포프 씨(23)는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연세대에서 국제협력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한국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자료도 없고 책도 팔지 않아 서러운 일이었다”며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등의 시를 좋아한다. 아는 게 많진 않지만 이번 과정을 통해 번역가로도 활동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22명의 원어민 수강생은 서로 다른 이유로 한국을 찾아왔으나 한국어와 한국문학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만큼은 한마음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원어민 번역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문학번역원의 교육을 받은 이들이 얼마나 번역가로 활동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한국문학을 자국에 알리는 첨병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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