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역사는 ‘인내천’ 실천 그 자체”

  • 입력 2009년 4월 1일 02시 59분


천도교 성지인 경북 경주시 용담정에서 만난 박남성 용담수도원장은 “하늘과 땅의 조화로 생긴 만물 중 가장 영특한 것이 인간”이라며 “봄처럼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경주=김갑식  기자
천도교 성지인 경북 경주시 용담정에서 만난 박남성 용담수도원장은 “하늘과 땅의 조화로 생긴 만물 중 가장 영특한 것이 인간”이라며 “봄처럼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경주=김갑식 기자
천도교 창도 150돌…경주 성지 지키는 박남성 용담수도원장

천도교가 5일 창도(創道) 150주년을 맞는다.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용담정(龍潭亭). 경주역에서 차량으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교조인 수운 최제우가 1860년 4월 5일 득도를 한 곳이다. 부산시교구장과 의창수도원장을 지낸 뒤 성지의 용담수도원을 지키고 있는 박남성 원장(65)을 만났다. 그의 안내로 찾은 용담정 내부는 단 위에 깨끗한 물을 담은 청수가 놓여 있을 뿐 소박한 분위기였다. 그는 “만물의 근본은 물이고, 물 한 그릇으로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창도 150주년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천도교의 역사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실천, 그 자체입니다. 최제우 대신사는 집안에 있던 두 명의 여종 중 한 명은 양딸로, 한 명은 며느리로 삼으면서 억압의 고리를 끊고자 했습니다. 동학혁명은 신분의 억압, 3·1운동은 국가 간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1926년 동아일보가 보도한 조선 종교현황에 따르면 당시 인구 2000만 중 천도교인 수는 200만 명으로 최대 종교였다. 하지만 지금은 10만 명 안팎으로 교세가 크게 위축됐다.

“천도교가 사람들에게서 멀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깥세상의 시계에 비해 천도교의 시계가 훨씬 느리게 간 겁니다. 교조의 말씀으로 복귀하면서도 현재적 시점에 맞도록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는 해가 떨어지면 인적이 끊기는 수도원을 지키고 있지만 어려운 경제 현실 때문에 더욱 각박해질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걱정했다.

그는 모든 사물을 아끼고 존중하는 ‘경물(敬物)’의 지혜를 강조했다. 천도교에서는 매 끼니를 준비할 때마다 식구당 한 숟가락씩 덜어낸 뒤 교당에 내는 ‘성미’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0, 70년대 어머니들이 돈이나 쌀을 조금씩 모아 나중 살림에 보태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들은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음공부와 함께 수행을 하고 있었던 셈이죠.”(웃음)

박 원장은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종교와 종교, 또는 정부와의 갈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땅에 물도 멀리 뿌리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땅을 가깝게 여기고 어머니 살처럼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바로 땅과 같이 나를 낮추는 게 사인여천(事人如天)이고, 불교에서는 하심(下心)이라고 하죠. 서로를 아끼는 성숙함이 있다면 갈등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는 용담정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개한 꽃을 가리켰다. 진달래였다.

“경상도에서 요즘 피는 걸 ‘참꽃’이라고 해요. 조금 지나면 같은 진달래라고 해도 진물이 많아져 음식 재료로 쓰기 힘듭니다. 각기 자신이 중심이고 최고라는 각자위심(各自爲心)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도, 종교도 제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경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