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표정을 바꾼다]<2>서울 강남구 논현동 ‘어반 하이브’

  • 입력 2009년 3월 25일 02시 57분


디자인-기능 절묘한 만남 ‘강남대로 숨구멍’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현대 모더니즘 건축의 기초를 마련한 미국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말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어반 하이브(urban hive)’는 설리번의 이야기를 노출콘크리트로 풀어 설명해놓은 듯한 건축물. 지름 1.05m 동그란 구멍이 송송 뚫린 이 17층 연회색 오피스빌딩은 건물과 차들로 빽빽이 채워진 교보타워 사거리에 놓인 한 점의 여백이다. 얼핏 보면 이름 그대로 독특한 벌집(hive) 모양을 내기 위해 만든 구멍 같다. 하지만 어반 하이브 외벽의 둥근 구멍은 건물 내부 공간을 최대한 널찍하게 확보하려 한 기능적 고민에서 나온 형태다.》

내부 넓게 쓰려고 기둥 안만들어

외벽 콘크리트만으로 건물 지지

70m높이 올리기엔 벽체 무거워

콘크리트 양 줄이려 원형구멍 내

설계자인 김인철 중앙대 교수(61)가 건축주로부터 처음 받은 요청은 익숙한 유리 커튼월 빌딩(전체 벽면을 유리로 감싼 빌딩)을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값비싼 용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건축주의 바람을 만족시키면서 피곤한 주변 풍경에 산뜻한 변화를 줄 방법을 찾으려 했다.

이 프로젝트에 주어졌던 건축면적 584m²는 사무실로 쓰기에 너무 좁지도 넓지도 않다. 엘리베이터와 계단, 화장실이 들어가는 코어를 빼고 나면 400m² 남짓한 공간. 여기에 하중을 지지하기 위한 내부 기둥까지 박고 나면 쓸 만한 공간이 얼마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내부 기둥을 만들지 않고 외벽 구조만으로 건물을 지지하게 만들어야 했죠. 이웃한 건물들과 똑같은 철골 유리 커튼월을 피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재료는 콘크리트뿐이었는데… 문제는 높이였습니다.”(김 교수)

콘크리트로 빈틈없이 채운 벽은 튼튼하긴 하지만 자체 하중 때문에 높이 올리기가 쉽지 않다. 촘촘히 뚫린 어반 하이브 외벽의 구멍 3000여 개는 콘크리트 양을 덜어내 벽체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고안한 해법인 것이다.

70m 높이의 노출콘크리트 벽 구조 건물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두께 40cm의 콘크리트 속에는 철근이 비스듬히 얽혀 있다. 그 사이로 뚫어낸 원형 구멍은 기능, 구조, 미의 건축 3요소를 아우르는 디테일이 됐다.

간단하면서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실현한 섬세한 시공도 돋보인다. 노출콘크리트 벽체는 자체 하중 때문에 한 층씩 단계적으로 만들어 올려야 한다. 벽 모양에 맞게 철판 거푸집을 만들고 그 안에 콘크리트를 부어 건조시킨 뒤 다음 층을 같은 방법으로 이어 올린다. 층과 층 사이에 자연히 생기는 흔적을 지워내 한 덩어리처럼 보이게 하는 작업에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반 하이브 외벽에서는 층과 층 사이를 구별하는 가로 선을 찾아볼 수 없다.

이 건물에서 근무하는 김진엽 씨(42)는 “서울 교보타워 사거리라는 곳이 시원한 느낌과 거리가 먼 공간인데, 출근해서 이 건물 안에 일단 들어오면 묘한 안도감 같은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화려하지만 편안하지 않은 풍경이잖아요. 그런데 여러 개의 구멍을 통해 내다보는 풍경은 어쩐지 조금은 한가로워 보여요. 천장에 드리운 발 뒤로 보이는 대상 같다고 할까요.”

설계와 시공감리에 참여한 건축사무소 아르키움의 조준영 씨는 “커튼월 건물 통유리 창에서 내다보는 풍경은 건물 어디에서든 비슷하다”며 “어반 하이브 안의 사람들은 눈앞의 구멍을 통해 서울 거리 풍경을 내다보는 자기만의 뷰파인더를 갖는다”고 말했다. 어반 하이브는 지난해 10월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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