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영화 ‘그랜 토리노’로 컴백 클린트 이스트우드

  • 입력 2009년 3월 20일 03시 00분


“난 이미 더럽혀졌으니까 괜찮아. 하지만…너는 그렇게 되면 안돼. 그러니 나 혼자 간다. 넌 이제, 네 인생을 살도록 하렴.”

19일 개봉한 ‘그랜 토리노’(12세 이상 관람가)에서 감독과 주연을 겸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던지는 대사다. 극장에 앉아 79세 노장의 비장한 얼굴을 바라보는 관객에게는 어쩐지 영화 속 소년에게만 건네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이스트우드는 2004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후 배우로 활동하지 않았다. 본인의 심중이 어떻든 여든을 눈앞에 둔 그가 요즘 내놓는 작품은 하나하나 의미가 각별하다. ‘그랜 토리노’에서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가 불편한 무릎을 쓸어안거나 피 섞인 기침을 뱉을 때마다 이스트우드를 아끼는 팬들은 가슴 철렁해진다.

월트는 ‘요즘 젊은 것들’의 행태가 하나같이 못마땅한 퇴역군인이다. 동네에 정착한 아시아계 ‘몽족’ 이웃들도 눈에 거슬린다. 애지중지하는 자가용인 1972년형 포드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 침입한 이웃집 몽족 소년 타오에게 총을 겨누는 월트. “집안일을 도와 사죄하겠다”는 타오에게 그는 “내 집 관리는 완벽하다”며 평소 볼썽사납게 여겼던 동네 다른 집들의 정비를 시킨다.

악연으로 시작된 관계가 평생 잊을 수 없는 끈끈한 인연으로 남는 일이 살다 보면 간혹 생긴다. 유산만 탐내는 자식들에게 받은 상처를 심술궂은 표정 밑에 감추고 살던 월트는 18세 소년 타오와 생애 마지막의 진한 우정을 나눈다.

이스트우드는 묵직하지만 거만하지 않은 성찰의 시선을 작품 속에 늘 견지해 온 감독이다. ‘그랜 토리노’에서 그는 어느 때보다 뚜렷한 자기반성적 태도를 드러낸다.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풋내기 갱들에게 총 쏘는 시늉을 해 보이는 이스트우드의 얼굴은 1970년대 ‘더티 해리’를 연상시킨다. 그는 첫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작인 ‘용서 받지 못한 자’(1992년)에서 1960년대 ‘황야의 무법자’ 시절 연기했던 잔인무도한 총잡이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했다. ‘그랜 토리노’의 월트는 정의라는 이름 아래 폭력의 아드레날린을 즐겼던 형사 해리의 늘그막을 보여주는 듯한 캐릭터다.

“항복하려는 어린애들을 죽이고 훈장을 받았던” 한국전쟁의 기억에 갇혀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아온 월트. 그는 인생의 황혼 녘에 만난 이방인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무기력한 소년 타오는 월트에게서 한 남자로 당당히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자신을 ‘역할 모델’로 삼고 따르는 타오를 바라보며 월트는 ‘좋은 죽음’을 위한 마지막 길을 주저 없이 선택한다.

“남겨진 이야기는 빛바랜 추억과 지나간 기억, 못다 이룬 꿈일 뿐…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네….”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무심히 흐르는 바닷가 풍경 위로 이스트우드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울려나온다. 걸쭉히 끓여낸 청국장 같은 이 소박한 노래를 들으며 “이스트우드가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는 것은 뉴욕타임스뿐이 아닐 것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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