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눈물 밴 시어로 길어올린 상처 보듬는 희망의 노래

  • 입력 2009년 3월 14일 02시 58분


◇ 빛의 사서함/박라연 지음/112쪽·7000원·문학과지성사

“눈물도 식량인데 헐값의 눈물들을 쌓아둘 곳간 궁리할 수밖에/다운증후군을 껴입고도 배우가 된 청년 강민휘, 배우로 사는 일이 행복해서 흘리던/절체절명의 갈비뼈에서만 순 트는 육체가 행복한 눈물이라면…방울방울 무사히 흘러나와 빵을 굽고 차를 끓이고 추운 가슴 골고루 덥힐 수 있다면”(‘낡아빠진 농사’)

시인은 일용할 식량을 나누듯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 상처 있는 타인의 삶을 진심으로 포용할 수 있는 눈물을 차곡차곡 저장하고 나눈다. 그 눈물 방울방울이 한 편 한 편의 시로 재탄생했다. 섬세한 감수성과 따스함이 배어 있는 시 세계를 선보여 온 중견 시인 박라연 씨가 여섯 번째 신작 시집 ‘빛의 사서함’을 펴냈다.

문학평론가 오생근 서울대 교수는 해설에서 “그녀의 시적 원류에는 눈물과 슬픔의 풍부한 자원이 있지만 그것은 비극적이거나 처연한 것이기는커녕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력을 잉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며 “가족의 테두리 밖에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현했다”고 말한다.

시인의 세심한 관찰은 이삿짐, 치매병동, 거실, 밥상 등 소박하고 주변적인 소재들로 이어져 소통에의 갈구와 포용의 온기를 표현해낸다. 시인의 그런 ‘모성적 상상력’은 고통, 죽음 가운데서도 생명과 삶의 의지를 발견해 위안을 준다.

‘산 채로 벼락을 몇 번쯤 맞으면/피를 빛으로 바꾸는지/온갖 새 울음 흘러넘치게 하는지…온갖 풍화를 받아들여 돌처럼/단단해진 몸을 손톱으로 파본다/빛이 뭉클, 만져졌다/산 자의 밥상에는 없는 기운으로/바꿔치기 된 듯/힘이 세져서 하산했다’(‘고사목 마을’)

‘남 걱정하느라 참 부산스럽’고 ‘소통되려고 기웃거리는’ 듯한 시들은 타인과 세상을 향해 진심으로 ‘마음 열어준 적’ 있는지 자문케 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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