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태풍에 학술연구도 휘청… 해외학술지 못 보는 서울대

  • 입력 2009년 3월 11일 03시 00분


영국 왕립항공공학협회가 매달 발행하는 ‘항공공학저널(The Aeronautical Journal)’, 세계적인 사회과학 월간지 ‘윤리와 행동(Ethics & Behavior)’, 연 8회 나오는 생물학계의 권위지 ‘국제발생생물학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Developmental Biology)’….

서울대 도서관이 올해 책값을 지급하지 못해 구독을 못하고 있는 2773종 해외 인쇄학술지의 일부다. 환율 급등의 여파로 서울대 도서관의 학술지 구독이 중단되면서 해외 학문의 최신 동향과 연구 성과를 파악하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

서울대는 올해 구독하기로 계약한 해외 인쇄학술지 2773종의 구독을 못하고 있다. 1월부터 발간된 학술지 931종과 3월부터 나오는 979종 등 인쇄물로만 나오는 1910종은 구독 중단 상태이며, 책과 전자저널로 동시에 제공되는 863종은 전자저널로만 서비스되고 있다. 예년 같으면 2008년 12월에 이뤄졌어야 할 계약이 2월 중순에 체결된 데다 구독료 302만 달러를 급등한 환율로 송금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1년 전보다 엄청나게 오른 환율. 2007년 말 이듬해(2008년) 구독료 계약 때 1달러에 930원 정도였던 환율이 2008년 12월 초 한때 1500원을 넘을 정도로 급등했던 것. 2008년 구독한 해외 인쇄학술지 3098종 가운데 이용률이 낮은 325종을 줄여 6억여 원을 절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상반기 중으로 지불을 미룬 전자저널 2만여 종의 구독료 170만 달러를 포함해 현재 지불해야 할 돈은 모두 472만 달러에 이르지만 예산은 67억 원으로 달러당 1500원으로 계산하면 30만 달러가 모자란다.

서울대의 해외 학술지 구독 중단은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대 도서관 김창근 수서정리과장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에도 일부 구독 규모를 줄이기는 했지만 구독 자체가 중단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학술지 수입대행업체 관계자는 “대학들이 해외 학술지 구독 계약을 하며 송금을 미뤄달라고 요청하는 일은 처음 본다”고 했다.

이로 인해 서울대 도서관에는 연구자들의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도서관 관계자는 “언제까지 학술지들을 볼 수 없느냐고 항의하는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전화가 하루에도 대여섯 통씩 온다”고 했다.

서울대는 이번 주에 1월부터 발간된 931종 학술지 구독료 67만 달러를 우선 송금하기로 했으나 3월 발간되는 979종과 전자저널로만 볼 수 있는 863종은 환율 추이를 지켜본 뒤 상반기에 송금할 계획이어서 정상적인 이용은 더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서경호 도서관장은 “입찰 가격을 낮추고 비용을 절감하는 등 대학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은 모두 시도해봤지만 현재로선 마땅한 대책이 없어 일단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실험기자재를 들여와야 하는 이공계 연구자들도 환율 급등으로 단가가 크게 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모 교수는 올해 프로젝트 연구비 일부로 실험용 장비를 구입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환율 때문에 수천만 원대로 생각했던 비용이 30%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공계 연구의 경우 실험실습을 가급적 많이 해야 좋은 성과가 나오는데 이렇게 되면 실험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환율 때문에 모든 분야가 어렵지만 학문 분야는 특히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물리학과 이상민 교수는 “해외 학자들과의 정보교류 차원에서 필수적인 학회 출장도 비용이 1.5배 이상 증가한 것 같다”며 “학계의 인적 네트워크 형성과 관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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