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가다]<10·끝>한국 미디어의 경쟁력은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대담

“글로벌화 못하면 생존 못해”

“자본-인력 진출입 유연해야”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맞아 방송 통신 신문 인터넷 등 매체 융합이 급진전되면서 한국에서도 국제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타임워너, 베텔스만 등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들이 해외 시장을 넓히고 있고 중국과 일본의 미디어 기업들도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발판을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민호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와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한국 미디어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봤다.》

세계적 IT 노하우 지닌 국내기업 컨소시엄 등 장기투자의 길 열어야

콘텐츠 경쟁력 위해선 영상 제작 유통 독과점 지상파 장악력 풀어야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 한국에서 가능한가.

▽안민호=매체 융합이라는 환경변화를 감안하면 지역의 확장, 즉 글로벌화는 필수 불가결하다. 그 흐름을 무시하고 한 나라의 미디어 기업이 폐쇄적이고 분리된 시장 속에선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젠 어느 나라든지 미디어 기업이 과연 얼마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심상민=미디어 업계는 콘텐츠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뉴스는 고급 정보로 영향력을 갖는 일종의 기함(旗艦) 역할을 하지만 영상이 콘텐츠의 중심에 서야 한다. 수용자의 다양한 요구에 맞춘 콘셉트 콘텐츠가 필요하다.

―한국형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 탄생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은….

▽안=국회에서 논란이 되는 미디어 관계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내적 규제를 조금 풀어주는 데 불과하다. 콘텐츠가 중심이 되는 미디어 그룹을 만들기 위해선 경쟁력 있는 콘텐츠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영상의 제작 유통 배급을 독과점하는 지상파 방송사가 콘텐츠 시장의 선순환을 저해하고 있다. 이 독과점 구조의 해결이야말로 콘텐츠 시장의 경쟁력을 키우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심=국내외 자본과 인력의 진출입이 유연해야 한다. 국내 미디어 업계는 법적 규제 때문에 자본과 인력이 들어오는 길이 막혀 있다. 대기업 자본을 싸잡아 나쁘다고 하면 미디어 경쟁력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이들이 미디어에 장기 투자를 하겠다고 하면 진출하게 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삼성, LG 등이 세계적인 정보기술(IT) 노하우를 지니고 있고 디지털 및 커뮤니티 미디어가 발달했다. 신문과 방송사, 전자 포털 게임업체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제휴한다면 글로벌 미디어 그룹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 사례와 우리의 대응을 꼽는다면….

▽안=일본의 소니 그룹은 1989년 미국 컬럼비아영화사를 인수하면서 글로벌 그룹으로 도약했다. 그것이 모델이 될 수 있다. 뉴스코퍼레이션은 호주에서 출발했으나 영국에서 신문을 인수하고 위성방송 분야에 진출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도 아시아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한류’를 불러일으킨 동력을 자산으로 삼아 해외에 나가야 한다.

▽심=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할리우드 7대 메이저 영화사 중 일부가 매물로 나온다는 말도 있다. 이는 한국 자본이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계의 힘만으론 어렵고 국내 통신사나 가전업체가 이런 상황을 세계적 미디어 그룹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의 콘텐츠 제작 유통 배급 시스템이 관건인데….

▽안=미국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참고할 만하다. 스튜디오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를 다수의 제작사로부터 납품받아 유통시킨다. 지상파와 같은 플랫폼에 종속된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별도 조직으로 독립시키는 것이다.

▽심=미디어 그룹이 반드시 큰 덩치를 가질 필요는 없다. 현재 인하우스(In House·플랫폼 사업자가 자체 제작을 겸함) 구조로는 창의적 프로그램이 나오기 어렵다. 기획과 유통을 핵심으로 한 기업과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다수의 ‘프리 에이전트(Free Agent)’가 부챗살 제휴를 맺는 네트워크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한류가 글로벌 미디어 그룹의 출현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안=최근 한류는 아시아 시장에서 ‘문화시장으로서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문화상품과 미디어산업은 지역성을 지니고 있다. 아시아는 중간 크기이면서도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다. 뉴스코퍼레이션이나 타임워너 등이 중국 인도를 비롯해 아시아 시장에 적극 진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강자가 되면 세계적인 강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심=아시아의 메이저 기업이자 세계의 마이너 기업을 거쳐 세계의 메이저 기업으로 가는 점진적 방법이 바람직한 듯하다. 우리가 한국어를 쓰기 때문에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영상 콘텐츠가 중심이 되는 미디어 시장에선 그런 문제를 우려할 필요가 없다. 텍스트가 영상화되는 순간 언어의 장벽은 사라진다. 기획력과 창작력으로 승부를 걸면 된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반대하는 측에선 여론의 다양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를 댄다.

▽안=이젠 절대 다수의 여론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의견으로 여론 시장은 잘게 나뉘고 있다. 과거 동질적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미디어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지역적 범위를 넓히든가 다른 매체로 진출하든가 해야 한다. 이종 매체의 결합은 미디어 산업의 생존 문제다.

▽심=열린사회로 나아가는 시점에서 지레짐작으로 겁먹어선 안 된다. 미디어와 같은 문화 권력은 소비자의 품으로 가고 있다. 인터넷으로 오디션을 봐서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유튜브 심포니’처럼 순수 예술을 고집했던 분야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문제가 된다면 철저한 사후 규제로 문화적 안전망을 만들어 주면 된다.

정리=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안민호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1965년 출생 △1990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96년 미국 뉴욕주립대 언론학 박사 △1996년 방송위원회 선임연구원 △2008년∼현재 한국언론학회 이사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1966년 출생 △1992년 서울경제신문 기자 △1999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 △1999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2008년∼현재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국경 넘는 미디어 기업 교류는…

글로벌 미디어 대부분 국내 진출… 한국 해외진출은 걸음마

해외 글로벌 미디어 그룹은 베텔스만과 비방디를 빼고는 대부분 국내 방송계에 진출해 있다. 이들은 해외의 자기 채널을 직접 재전송하거나 한국 지사 또는 국내 기업과의 합작법인을 통해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바이어컴은 한국법인인 MTV네트워크코리아를 통해 음악 채널인 MTV와 어린이 만화채널 니켈로디언(닉채널)을 방영하고 있다. MTV는 국내 가요를 선호하는 시청자의 취향에 맞게 가요 프로그램을 비중 있게 내보낸다. MTV는 해외 지사 네트워크를 통해 비, 휘성 등 한국 가수의 미국 진출을 후원하고 있다.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은 홍콩 스타TV와 스타스포츠를 재전송 방식으로 국내에 방영한다. 자회사인 폭스는 국내 최대 케이블망 사업자인 T브로드를 통해 폭스 폭스라이프 폭스익스트림 등 여러 채널을 내보내고 있다. 디즈니 계열로는 어린이 채널인 디즈니가 들어와 있고, 스포츠채널 ESPN도 MBC와 합작해 진출했다.

한국 미디어 그룹의 해외 진출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지상파는 드라마 등 프로그램의 수출에 주력하고 있고 케이블업체인 CJ미디어, 통신사인 SK텔레콤 등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CJ미디어는 올해 상반기 폭스인터내셔널과 합작해 ‘tvN 아시아’ 채널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자회사인 tvN의 콘텐츠와 폭스의 배급망을 활용해 아시아 시장에서 500만 시청 가구 확보를 도모하고 있다. CJ미디어는 여성채널인 ‘올리브 아시아’, 음악채널인 ‘M.net 아시아’도 추진 중이다.

또 CJ미디어는 중국 상하이 미디어 그룹과 합작해 홈쇼핑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음악채널인 M.net을 기반으로 ‘CJ미디어 재팬’을 설립해 위성과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하고 있다.

SK텔레콤은 2008년 중국 음반사인 ‘티알뮤직’의 지분 42.2%를 가져 최대주주가 됐고 중국 온라인 게임회사인 ‘매직그리드’의 홍콩법인에 78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 30%를 확보했다. SK계열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싸이월드는 2005년 중국과 일본, 2006년 미국과 대만, 2007년 베트남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상파의 경우 KBS가 KBS월드를 통해 미국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등에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으며, MBC SBS는 일본의 한국 프로그램 전문 채널인 KNTV에 지분을 투자하고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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