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운명에 굴하지 말라” 신화는 인간을 단련시킨다

  • 입력 2009년 3월 7일 02시 59분


◇신화 전사를 만들다/김용호 지음/376쪽·1만7000원·휴머니스트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모든 사람에게는 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렵고 기댈 곳 없는 시절일수록 역경에 영웅적으로 대처한 존재에게 기대고 싶은 법이다. 수천 년 전 신화 속에는 21세기 첨단과학 시대의 사람들도 새겨듣고 힘을 얻을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신화를 주제로 강의했던 저자가 동서양 신화 속에서 찾아낸 인생의 통찰은 전사(戰士)적 삶이다.》

신화 속 주인공들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계시나 꿈이 비록 황당할지라도 목표를 실현할 의지로 승화시켰다. 꿈이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한순간도 버리지 않았고 고난의 상황을 회피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사사로운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상을 위해 몸을 던졌다.

저자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 책은 위기가 난무하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신화가 건네는 행동지침서로 읽힌다.

신화 속 전사들은 꿈을 삶의 의지와 결합했다.

신라시대 문희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황후가 된 것은 단지 언니의 꿈을 샀기 때문이 아니다. 신화 속 꿈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거나 예측이지만 그 자체로 실현되지 않는다. 서쪽 산에 올라 소변을 봤더니 경주에 소변이 가득 찼다는 꿈은 언니에게는 희한한 꿈 이상은 아니었다. 황후가 되겠다는 문희의 의지와 실력이 꿈과 합쳐져 목표에 대한 비전으로 변한 것이다.

전사들은 꿈을 단단히 붙든 뒤에는 결코 놓지 않았다.

그리스 신화 물의 요정 키레네의 아들인 아리스타이오스는 꿀벌을 치는 데 달인이었다. 어느 날 그의 벌 무리가 전멸하자 아리스타이오스는 좌절한다. 어머니는 예언자 프로테우스를 찾아가면 이유를 알 수 있지만 쉽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로테우스를 잡아 사슬로 묶고 이유를 알려줄 때까지 사슬을 단단히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테우스는 아리스타이오스에게 잡힌 뒤 불, 강, 무서운 짐승으로 변신하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아리스타이오스는 죽을힘을 다해 사슬을 붙들었고 결국 벌이 죽은 이유를 알아냈다. 저자는 “예언자나 하늘은 해답을 쉬이 알려주지 않으며 쉽게 얻는 대답은 금방 잊혀진다”고 말한다.

전사는 또 고난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극복한다.

그리스 신화 티탄족의 여신 레토는 제우스와 하룻밤을 보냈다가 헤라의 분노 때문에 임신한 채 곳곳을 방랑해야 했다. 온유한 그는 방랑 과정에서 겪은 거절, 추방, 모멸 상황에서 화를 내는 대신 온유의 힘을 훈련한 덕분에 해(아폴로)와 달(아르테미스)을 낳아 세상에 선물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전사의 또 다른 덕목은 무엇을 버려야 할지 안다는 것이다.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 오딘은 지혜를 얻기 위해 지혜의 샘을 찾아갔지만 샘을 지키는 거인 미미르는 샘물을 내주지 않았다. 샘물을 마시기 위해 오딘은 한쪽 눈을 내놓아야 했다. 오딘은 기꺼이 눈을 뽑아 바닥에 내려놓은 뒤 샘물을 마음껏 들이켰다. 오딘은 애꾸눈 신이 됐지만 눈을 버린 대신 사물의 본성과 진리를 아는 새로운 눈을 얻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극한의 정성을 다하는 것도 전사의 특징이다. 신라 승려로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는 비구가 되기 전인 사미 시절 스승에게서 미륵과 지장 두 성인 앞에서 직접 계를 받으라는 말을 듣는다. 열두 살인 진표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스물일곱까지 명산을 다니며 수행했지만 두 보살을 만나지 못한 진표는 절벽에서 몸을 날리고 돌로 몸을 두드리며 참회를 계속했다. 손과 팔이 부러져 땅에 떨어지자 그제야 지장보살이 나타나 계를 받을 수 있었다.

저자는 이야기의 보고(寶庫)라는 측면에서 동서양 신화의 공통 요소를 찾은 ‘신화, 이야기를 창조하다’(휴머니스트)도 함께 출간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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