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시다’의 힘!…이틀새 23만명 조문

  • 입력 2009년 2월 19일 02시 58분


마지막 모습 간직하려…18일 오전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이 유리관 안에 안치된 서울 중구 명동성당을 찾은 조문객들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김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마지막 모습 간직하려…
18일 오전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이 유리관 안에 안치된 서울 중구 명동성당을 찾은 조문객들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김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실상 ‘국민장’

‘양보-희생-사랑’ 엄숙한 행렬 이어져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명동성당에 세대와 지역과 이념과 종교를 초월한 추모 인파가 몰리면서 ‘국민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9만2000여 명이 다녀간 17일에 이어 18일에는 오전 4시 반경부터 시민들이 조문하러 오기 시작했으며 낮 12시경에는 지하철 4호선 명동역까지 약 2km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하루에만 14만2000여 명이 빈소를 찾았다.

시민들은 유리관에 안치된 추기경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1분 안팎이지만 그 짧은 만남을 위해 2∼3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다. 오전 5시 40분경 전동휠체어를 타고 성당을 찾은 임아나타샤 씨(62·여)는 “어제도 왔지만 추기경님 천국 가시라고 기도하고 싶어서 또 왔다. 두 시간이나 기다렸고 다리도 시리지만 내일 또 오겠다”고 말했다. 경남 사천시 삼천포에서 왔다는 서영이 씨(64·여)는 서울 신림동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아들 김정웅 씨(32)와 함께 빈소를 찾았다. 서 씨는 “추기경께서 돌아가셨는데 지금 고시 공부가 대수냐”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모 열기는 사랑을 실천해 온 추기경이 영원히 떠남으로써 우리 사회가 어른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겪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추기경은 우리 시대에 부족하고 절실한 권위의 상징이었다”며 “추기경의 이름은 민주주의와 도덕성,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은 소통성, 설득의 가치를 의미했다”고 말했다.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은 “1970년대까지는 왕의 죽음을 어버이의 죽음으로 여겼던 조선왕조의 유풍이 남아 있어 수십만의 추모 인파가 몰렸다지만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김 추기경은 전 국민의 배웅을 받는 마지막 인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선종 직전 “서로 사랑하며 사십시오”라는 마지막 가르침을 남긴 김 추기경은 소중한 교훈도 남겼다. 문영이 씨(50)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새치기 한 번 없다”며 “추기경께서 바란 게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 행렬에서는 새치기, 실랑이, 고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앞으로 가시라”며 순서를 양보했다. 임재원 씨(55)는 “양보, 희생, 사랑을 강조하신 추기경을 뵙는데 목소리를 높여서야 되겠느냐”며 “추기경께서 정말 여러 사람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는 조문 행렬과 장기기증자의 증가 등에 대해 ‘긍정의 군중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며 “가족, 나아가 집단적으로 ‘삶의 교과서’였던 추기경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려는 집단 학습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동아닷컴 백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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