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그리스 비극과 ‘아메리칸 드림’이 만나면…‘뉴욕 안티고네’

  • 입력 2009년 2월 18일 02시 58분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연극 ‘안티고네’는 서구지성사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온 비극 작품 중 하나다. 안티고네는 비극의 대명사인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출생의 비극을 안고 있는 그녀는 테베에 대한 국가반역죄로 목숨을 잃은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지 못하도록 한 삼촌 크레온 왕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크레온은 그런 안티고네를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자’ ‘살아도 죽어있는 자’로 만들어버린다. 안티고네는 그에 대한 저항으로 목을 매 자살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저서 ‘정신현상학’에서 이 작품을 다루면서 크레온이 국가와 이성을 대표하는 ‘인간의 법’을 대표한다면 안티고네는 자연과 감성을 대표하는 ‘신의 법’을 대표한다고 해석했다.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남성 대 여성의 대결로 이를 풀어냈다. 하이데거는 안티고네를 스스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존재의 섬뜩함’의 표상으로 해석했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타인의 윤리에 타협하지 않고 자기 욕망에 끝까지 충실했다는 점에서 안티고네를 ‘죽음을 향한 존재의 승리’로 봤다.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은 안티고네를 세속에서 철저히 부정함으로써 오히려 세속의 모순을 극명히 드러내는 존재 ‘호모 사케르’로 풀어냈다.

산울림 소극장이 기획한 ‘연극 연출가 대행진’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고 있는 극단 백수광부의 ‘뉴욕 안티고네’(연출 이성열·사진)는 이런 전방위 해석의 어느 지점에 위치할까. 폴란드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약 중인 극작가 야누시 그워바츠키의 원작을 국내 초연한 이 작품은 하이데거와 아감벤의 해석을 토대로 한다.

무대는 고대 테베의 궁중에서 20세기 말 뉴욕의 노숙인 공원으로 옮겨진다. 안티고네는 노숙을 하다 얼어 죽은 존의 시체를 행려병자 집단매장지가 아닌 노숙인 공원에 묻어주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여자노숙인 아니타(정은경)다. 크레온은 법질서를 앞세워 이들 노숙인을 단속하는 뉴욕경찰관 짐 머피(정만식)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은 이들이 아니다. 아니타의 부탁과 돈을 받고 존의 시체를 빼돌리는 임무를 맡은 러시아 출신의 노숙인 샤샤(김동완)와 폴란드 출신의 약삭빠른 노숙인 ‘벼룩’(박완규)이다. 그들이 아옹다옹 다투며 기껏 훔쳐온 시체는 존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미국적 질서와 삶에서 소외된 두 사람의 충격적 진실이 드러난다. 미국의 심장부 뉴욕 밑바닥 하층민의 삶을 통해 ‘팍스 아메리카’와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적 전통에 서 있다.

극의 막판 아니타와 샤샤를 파멸로 몰아가는 존재가 머피 경관이 아닌 ‘벼룩’이라는 점에선 인간존재의 섬뜩함에 주목한 하이데거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편 고향을 떠나 뿌리 뽑힌 삶에 대한 연민은 철저히 그워바츠키 적인 것이다. 그래서 연극의 제목은 ‘뉴욕 안티고네’일 수밖에 없다. 3월 1일까지 2만∼3만 원. 02-764-7462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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