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정조의 편지들 ‘독살설’ 뒤집을만 한가

  • 입력 2009년 2월 17일 21시 09분


◆정조 독살설, 진실? 거짓?

(박제균 앵커) 조선의 22대 왕 정조의 비밀편지가 공개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편지가 몰고 온 파장은 여전합니다. 특히 '정조의 반대파인 노론 벽파가 정조를 독살했다'는 이른바 '정조 독살설'의 진위에 대한 공방이 뜨겁습니다.

(김현수 앵커)비밀편지의 수신인이 노론 벽파의 중심인물인 심환지라는 점에서 독살설은 근거가 약해졌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이번 편지가 오히려 독살설을 뒷받침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조의 비밀 편지를 취재한 문화부 금동근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금 기자, 독살설 논란이 뜨거운데요, 편지의 어떤 내용 때문인가요.

(금동근) 공개된 편지 가운데 정조가 자신의 병세를 밝힌 몇 통이 논란의 원인입니다. 정조는 편지에서 '머리가 부어오르며 목과 폐가 메마른다' '뱃속의 열기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 않는다'는 등 병세를 상세히 전했습니다. 만약 심환지를 의심했다면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거라는 게 독살설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해석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제국'을 쓴 이인화 교수와 '조선왕 독살사건'의 작가 이덕일 씨는 독살설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병세를 밝혔다는 사실 만으로 독살설의 근거가 약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입니다. 만약 심환지가 실제로 정조의 측근이었다면 '정치적 암살은 항상 최측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해석도 제기됐습니다.

(박 앵커) 역사의 미스테리군요. 만약 독살설이 허구라면 정조의 실제 사망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금) 이번 편지을 통해 실제 사망원인을 밝히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병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은 있습니다. '얼음물을 마시거나 차가운 온돌의 장판에 등을 붙인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고 할 정도로 정조는 열 때문에 고생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록에는 등창, 즉 부스럼이 사망원인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등창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잘못 쓰는 바람에 명을 재촉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김 앵커)이번 편지로 인해 정조와 노론 벽파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벽파는 정조와 대립각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파벌이 아닌가요.

(금)네 그렇습니다.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벽파는 정당하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정조가 벽파를 미워했고, 벽파는 정조와 사사건건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편지를 통해 벽파의 수장인 심환지와 정조의 관계가 무척 가까웠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또 편지에는 벽파의 세력 약화를 걱정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편지의 완역본이 나오면 좀더 세밀한 분석이 이뤄져야할 부분입니다.

(박 앵커) 이번 편지를 통해 정조가 '막후정치'를 활발하게 펼쳤다는 사실도 확인됐지요?

(금)정조는 "충청도의 인심을 수습하기 위해 자리를 안배하라"거나 "이 자리에 누구를 앉혀라"는 식의 지시를 내릴 정도로 막후에서 인사에 적극 개입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정조는 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심환지에게 상주, 즉 왕에게 말씀을 아뢰도록 한 뒤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일을 처리한 적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심환지에게 상주문의 글귀를 직접 써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정조의 실제 모습이 편지에 많이 투영돼 있습니다. 특히 정조의 다혈질적인 면모가 드러났습니다. 젊은 학자 김매순이 호론의 대표인 한원진에 반대하자 이에 화가 나서 쓴 편지를 보면 정조의 다혈질적인 기질이 잘 드러납니다. "놈들이 한 짓에 화가 나서 밤에 이 편지를 쓰느라 거의 오경이 지났다"고 토로한 대목입니다. 정조는 또 신하들을 꾸짖는 편지에서 '호로자식' '젖비린내' '주둥아리' 같은 단어까지 쓰면서 막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김 앵커)정조의 이름이 이산이죠? 이산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곳곳에서 나타났지요?.

(금)한자로 써내려가던 편지에서 뜬금없이 '뒤죽박죽'이란 한글을 쓴 것을 두고 성격이 급했을 거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개에 물린 꿩 신세' '꽁무니 빼다' '누울 자리 보다' 같은 속담과 비속어를 사용한 대목에선 권위와 체면을 버린 소탈한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정조는 또 잠시 곁을 떠나 있던 심환지에게 "헤어진 뒤로 어느 덧 달이 세 번 바뀌고 50일이 지났는데, 그리운 마음에 잊지 못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신하를 따뜻하게 챙긴 군주이기도 했습니다.

(박 앵커) 정조 어찰 299통을 풀어쓴 역주집이 다음달에 발간되면 또 어떤 사실이 밝혀질지 궁금합니다. 금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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