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며 사십시오” 김수환 추기경 선종

  • 입력 2009년 2월 17일 02시 56분


생전 약속한대로 각막 기증

《“여러분! 서로 사랑하며 사십시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자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 12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서거를 뜻하는 천주교 용어)했다. 향년 87세. 세례명은 스테파노.》

서울대교구는 이날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이 사인이며 선종 때 큰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백성호 비서신부는 “(김수환 추기경께서) 병실을 찾은 주위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했다. 돌아가시기 3, 4일 전부터 ‘과분하게 평생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며 추기경의 마지막 가르침을 전했다.

고인은 1922년 대구에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1941년 서울 동성상업학교(현 동성고)를 졸업한 뒤 같은 해 일본 도쿄 조치(上智)대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학병으로 징집됐다 일제가 패망한 뒤 귀국한 고인은 1951년 사제품을 받고 대구대교구 안동성당과 김천성당 주임 신부, 1966년 초대 마산교구장,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되면서 대주교가 됐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에 서임됐을 당시 전 세계 추기경 136명 중 최연소였다.

1966년 주교품을 받으면서 사목표어로 설정한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를 교회와 현실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헌신했다.

1970년대에는 독재로 치닫던 박정희 정권의 위협 속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성회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가운데 개최했고 1998년 서울대교구장을 은퇴한 뒤에도 강연과 사회 활동을 통해 살아 있는 시대정신을 보여줬다.

정진석 추기경은 16일 메시지를 통해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항상 우리 사회의 큰어른으로 빛과 희망이 되어 주셨다”며 “평소 추기경께서 바라던 대로 이 땅에 평화와 정의가 넘치도록 마음을 모아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하고 기도해 달라”고 밝혔다.

이날 고인이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 장기 기증을 약속한 것에 따라 안구 각막 적출 시술이 이뤄진 뒤 유해는 서울 명동성당으로 운구됐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며 유해는 가톨릭 관례에 따라 유리관에 안치돼 조문객을 맞는다. 20일 오전 10시 명동성당에서 정 추기경 주례의 장례미사가 열린다. 빈소는 명동성당이고, 장지는 경기 용인시 용인 천주교회 서울대교구 묘지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교황 베네딕토16세 “깊은 애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6일 정진석 추기경 앞으로 보낸 조문에서 “깊은 애도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李대통령 “국가적 큰 손실”

이명박 대통령은 16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이 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비마다 국가 원로로서 큰 역할을 해 오신 추기경님을 잃은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떠나는 순간까지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추기경님의 뜻을 받들어 어려울 때 서로 사랑을 나누는 일에 함께하겠다”며 이같이 애도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동아닷컴 임광희 기자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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