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옷 日軍에 안뺏기려 땅에 파묻어”

  • 입력 2009년 2월 13일 02시 59분


문용기 선생의 ‘혈의’를 보도한 동아일보 1983년 3월 31일자 지면.
문용기 선생의 ‘혈의’를 보도한 동아일보 1983년 3월 31일자 지면.
문용기 선생 손자 성현씨

“실증 연구 없이 3·1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허공에 내지르는 소리일 뿐입니다.”

만주와 러시아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박환(51·사진) 수원대 교수는 10년 전부터 경기 지역의 3·1운동을 연구해 왔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그 속에 깃든 정신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후 경기 화성시 송산, 우정, 장안면과 안성시 원곡, 양성면의 3·1운동 관련 희귀 자료를 대거 발굴해 이 지역의 3·1운동을 구체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화성시가 지난해 송산면 사강리에 3·1운동 주요 참가자 42명의 이름을 일일이 적은 기념탑을 세우고, 당시 참가자들에게 총격을 가했던 일본 순사부장 노구치의 처단 장면을 재현할 때도 박 교수의 연구 결과가 바탕이 됐다. 박 교수는 “중고교 교과서에도 전국으로 확산된 3·1운동의 흐름이 자세히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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