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은 나의 수도장”…‘흙에도 뭇 생명이…’ 권오길 교수

  • 입력 2009년 2월 3일 02시 58분


“옛 어른들은 세상에 태어나는 일을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낙지(落地)라고 했습니다. 죽을 때가 되면 흙냄새가 구수해진다고도 하지요.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가는데 그 흙 속에 사는 생명들이 왜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생물학자인 권오길(69·사진) 강원대 명예교수는 2005년 정년퇴임한 뒤 강원 춘천시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춘천교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집 근처에 마련한 연구실에서 글을 쓰는 시간을 제외하면 150평 남짓한 밭뙈기에서 남새를 키운다. 흙냄새를 맡고, 땅강아지며 지렁이며 흙 속 생명들을 만나며….

2일 출간된 ‘권오길 교수의 흙에도 뭇 생명이…’(지성사)는 그가 텃밭 생활을 하며 느낀 소회와 흙 속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날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권 교수는 두더지 얘기를 꺼냈다. 농반진반 농사를 지으며 두더지의 습성을 새롭게 깨달았다고 했다.

“농사지은 무를 밭 한쪽에 흙을 파고 묻어 뒀는데 어느 날 보니 두더지가 갉아먹었지 뭡니까. 육식동물인 두더지가 무를 먹는다는 새로운 학설을 늘그막에 발견한 셈이지요. 하하.”

쇠똥구리와 쥐며느리, 진딧물에서 평생 연구의 테마였던 달팽이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만난 생명들 얘기에 신명이 났다. “독한 감기에 걸려 좋아하는 술도 못 마신다”던 권 교수는 막걸리를 시켜 한 사발 들이켰다.

“땅강아지 요놈은 사시사철 그렇게 덥거나 춥지 않은 땅굴에서 살아요. 인간이 죽으면 묻히는 땅속은 온도가 1년 내내 큰 변화가 없지요. 천적의 눈에 띄는 것도 피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지요.”

권 교수는 텃밭을 ‘수도장(修道場)’이라고 불렀다. “운력(運力)으로 팔다리가 튼실해지니 몸에 좋고, 영혼이 씻겨 잡념이 사라져 버리니 정신 건강관리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흙에서 만나는 생물들의 존재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고도 했다.

1994년부터 거의 매년 책을 펴내는 그에게 “8월이면 칠순”이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스승인 김준민(95) 서울대 명예교수가 2006년 ‘들풀에서 줍는 과학’이라는 책을 출간한 일을 들며 “스승을 본받아 20년은 더 글을 쓰고 책을 내야겠다”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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