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설]연극 ‘친정 엄마와 2박 3일’서 만난 강부자 씨

  • 입력 2009년 1월 23일 02시 58분


“47년간 세상 모든 엄마역할 다 해봤지만

‘뿔난 엄마’ 같은 야무진 엄마 해보고 싶어”

“내 새끼, 보고 싶은 내 새끼. 너한테는 참말 미안허지만 나는 니가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니가 허락만 헌다믄 나는 계속, 계속 너를 내 딸로 낳고 싶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제일 보람된 것은 너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와서 한 일 중 제일 후회되는 일은 그것 또한 너, 너를 낳은 것이다. 사랑한다, 내 딸아.”(극중 엄마의 마지막 대사)

엄마처럼 세상 모든 딸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단어가 또 있을까. 연극 ‘친정 엄마와 2박 3일’(극본 고혜정, 연출 구태환)은 죽음을 앞둔 딸(전미선)이 전기장판에 의지해 외롭게 살고 있는 친정 엄마(강부자)를 찾아가며 시작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딸에게 이상한 낌새를 차린 엄마는 점차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을 준비한다.

16일 첫 공연을 앞둔 대기실에서 친정 엄마 역을 맡은 강부자(68) 씨를 만났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오후 그는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에 항상 보고 싶은 존재”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47년간 연기했던 ‘엄마’

1962년 KBS 공채 2기 탤런트로 데뷔한 그의 첫 배역은 중매쟁이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는 늘 엄마 역할이었다. 날품팔이 홀어머니부터 딸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 천박한 졸부이자 철없는 엄마까지…. 47년을 배우로서 살면서 후회 없이 다양한 엄마가 됐다.

많은 사람들의 엄마로 살아왔지만, 배우로서 한 번쯤 해봤으면 하는 엄마 역할도 있다. 그가 시누이로 나온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한자(김혜자) 같은 엄마다. “배우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태어난다지만 이 얼굴 가지고 천의 얼굴은 안 되나 봐요.(웃음) 여배우로서 예뻐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배우로서 원이 있다면 ‘한자’ 역은 한 번쯤 해보고 싶어요.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희생도 하지만 자신의 세계가 분명한, 그런 엄마 말이우.”

○ 강부자라는 ‘엄마’

그의 자녀들(1남 1녀)은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7년 전 미국으로 간 딸 승하 씨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통화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각별한 모녀지간이다. 행여 타국에 있는 딸이 연극을 보러 오지 못하는 게 서운하지는 않을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번 연극 하면서 우리 딸이 곁에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연극 ‘오구’ 할 때 딸아이가 왔는데 무대 위 날 보고 질질 울더라고. 엄마가 정말 죽는 것 같고 아파하는 것 같대요. 이번 작품은 오죽하겠어요. 딸과 엄마의 얘기인데.”

배우 강부자로 평생을 살았지만 집안에서 그는 “평범한 승하 엄마일 뿐”이다. 그가 자녀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 또한 “좋은 배우 이전에 훌륭한 엄마”다. 그래서인지 바쁜 배우 생활 중에도 그는 장을 직접 담그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 강부자의 ‘엄마’

그의 어머니는 엄한 분이셨다. 세상에서 누가 가장 무섭냐고 묻는다면 그는 주저 없이 친정 엄마를 꼽겠다고 했다. “한여름에 민소매도 못 입게 했어요. 집에서 반바지도 못 입는 사위는 ‘장모살이’를 제대로 했죠. 딸이 말대답을 하면 설거지물을 뒤집어씌울 정도였으니까. 무조건 내 새끼만 위하는 엄마는 아니셨어요.”

그의 어머니는 일하는 딸을 위해 19년간 손자 손녀를 돌봐주셨다. 그러다 보니 육아 문제로 어머니와 싸운 적도 부지기수. 하지만 모녀간 다툼은 하루를 넘기는 일이 없는 법이다. “엄마는 ‘내가 갈 데가 없어 여기서 애들을 길러주는 줄 아느냐’고 하면서도 한 번도 나가신 적이 없었어요. 애들이 걱정되니까. 모녀지간은 그런 것 같아요. 싸우다 금방 후회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입만 달싹해도 아는 게 딸과 엄마 사이 아닌가요.”

3월 1일까지. 서울 중구 동국대 이해랑극장. 4만4000원. 02-6005-6731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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