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설]웃어라,한복

  • 입력 2009년 1월 23일 02시 58분


세계적인 한복 디자이너 4인 인터뷰

민족의 명절인 설을 맞아 한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얼마나 한복을 즐겨 입고 있으며 우리 옷에 애정을 갖고 있을까.

자수와 손뜨개 등 ‘핸드 메이드’가 세계 패션을 주도하는 이때, 어쩌면 한복은 이런 트렌드의 선봉에 설 수 있는 옷이 아닐까. 고운 빛깔이 나올 때까지 옷감을 물들이고, 한 땀 한 땀 꽃무늬 자수를 놓는 자연과 사람의 옷 말이다.

동아일보는 한복을 세계에 알리는 자랑스러운 한복 디자이너 4명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비록 양장보다 귀한 대접을 못 받아도 묵묵히 한국의 아름다움을 옷에 담는 사람들….

이름 석 자가 곧 큰 힘이 되는 국내 한복 디자인의 거장(巨匠) 이영희(71) ‘이영희 한국의상’ 대표, 사고로 오른팔을 잃고도 30여 년간 한복을 만들어 온 이나경(55) ‘아라가야’ 대표, 아름다운 색감으로 한복의 미(美)를 일깨우는 이혜순(49) ‘담연’ 대표, 한국무용을 전공한 뒤 한복 디자인의 길을 걷게 된 신인 이서윤(33) ‘이서윤 한복’ 대표다.

세계인이 입는 ‘바람의 옷’

▼“입는 사람 체형따라 변하는 게 매력”▼

○ APEC 두루마기 지은 이영희 씨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이영희 한복 의상’을 찾아갔을 때 이영희 씨는 막 청와대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대통령 내외가 문화계 인사들을 불러 ‘우리 문화를 위해 애써줘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한복을 짓는 저는 문화계로 분류돼나 봐요.”

1977년 ‘이영희 한복의상’을 열고 시작된 그의 한복 디자인 세월은 올해로 33년째. 1994년 프랑스 파리에 한복 가게를 열고 2004년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이영희 코리아 박물관’도 열었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21명의 각국 정상이 입은 두루마기도 그가 만든 작품이다.

이 씨가 2004년 뉴욕에 ‘돈 안 되는’ 한복 박물관을 열 당시 기자는 현지에서 그가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봤었다. 노래방과 음식점 등 상업시설로 가득 찬 한인타운에 한복 박물관이 생겼을 때 교민들은 벅찬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이영희가 만들어내는 한복은 오묘한 선(線)과 대담한 형(刑), 그리고 독창적 색상을 모두 보여 준다. 동양의 모든 미학을 함께 모아 놓았다.”

이 씨는 한복의 매력에 대해 “입체 재단으로 만드는 서양의 옷은 형태가 고정돼 있지만 한복 치마는 입는 사람의 체형에 따라 다른 옷으로 거듭 난다”고 말했다.

그는 옷을 지을 때 먹자주색과 회색의 배합을 가장 좋아한다. 2005년 베니스 영화제 때 배우 이영애가 입은 그의 한복도 먹자주색 저고리와 회색 치마였다. 홀로도 아름답지만 상대를 빛내는 색이 회색이란다.

그로 인해 한복은 세계로 뻗었다. 1986년 프랑스에서 열린 한-프랑스 수교 100주년 기념 패션쇼에서 샤넬과 지방시 등 쟁쟁한 패션 브랜드들이 한복을 디자인해 선보였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내정자를 찾아가 한복을 선물할 땐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영어 40문장을 달달 외웠다.

“제게 남겨진 인생의 시간이 많지 않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기도 합니다. 한국인들도 서양인들처럼 편견 없이 순수하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긴 한복을 좋아한다는 사람들도 ‘이영희 한복’에 대해선 너무 비쌀 것이란 편견이 있는 듯하다. 대개 100만 원 정도면 저고리와 치마 한 벌을 맞출 수 있는데도 말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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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북돋는 색으로 마음까지 치유하죠”▼

○ 역경 이긴 이나경 씨

서울 종로구 재동 한복 디자이너 이나경 씨의 작업실 ‘아라가야’. 아침부터 내린 눈 때문인지 헌법재판소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그의 작업실 입구에 걸린 하얀 배자(조끼)가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는 요즘 전북 남원의 한 폐교에 한복 아카데미를 세우기 위해 분주하다.

“1년에 6차례 인근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복에 대해 무료 강의할 생각이에요. 한복을 업(業)으로 삼으려는 이들을 모아 공동 작업실도 만들 계획입니다.”

그는 다음 달 7일부터 28일까지 보스니아에서 열리는 ‘사라예보 오가닉 아트페어’에도 참가한다. 국내에서 순수 예술작가가 아닌 복식 디자이너로 이곳에 초청받은 건 이 씨가 처음이다.

“한복을 조형물로 해석한 설치 예술을 선보일 생각이에요. 강미리 부산대 무용학과 교수가 이끄는 무용단이 개막공연을 맡게 돼 무대의상도 함께 맡았습니다. 한국의 색에 대해서도 강의할 계획이에요.”

그는 한복에 쓰이는 모든 천을 손수 자연 염색으로 물들여 작업한다. 자연이 허락한 색만을 옷에 담아낸다. 천연 재료로 염색한 그의 옷들은 봄에 핀 들꽃처럼 화려했다.

“서양에서는 색을 단순히 빛의 굴절로 보죠. 하지만 동양에서는 색을 우주로 해석하고 그 안에 만물을 담습니다.”

그는 한복을 제작할 때 그 옷을 입을 사람의 부족한 기운을 보충해줄 수 있는 색을 골라 쓴다. 옷으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셈이다. 하지만 매번 사람의 손이 닿아야 하는 자연 염색은 고된 작업이다. 오른팔이 없는 그에겐 더욱 그렇다.

그는 한복을 지을 때 재단을 하지 않는다. 직선과 직선이 만나 자연스러운 곡선이 나오는 전통방식 그대로 만든다. 그래서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그의 한복은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는다. 주한 외교사절이나 대사부인 단골도 그래서 많다.

“우리와 체형이 다른 서양인들에게 한복 그대로를 입힐 수는 없겠죠. 하지만 한복 고유의 선과 색, 옷의 철학을 살리면 한복도 충분히 세계화할 수 있어요.”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편안하고 기품있고 가장 과학적인 옷”▼

○ ‘쌍화점’ 의상 만든 이혜순 씨

영화 ‘쌍화점’과 ‘스캔들’에서 각각 고려, 조선시대 한복의 아름다움을 재현해 낸 ‘담연’의 이혜순 씨를 찾았을 때 그는 갈색 털로 장식된 기품있는 흰색 배자와 보라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 씨의 한복은 색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벚꽃 혹은 녹차의 빛깔을 닮은 은은한 파스텔 톤부터, 붉은 노을과 깊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색감에 이르기까지…. 한복의 전통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젊은이들도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세련된 한복을 만들어낸다.

“한복을 지을 때는 맨 먼저 소재를 고르고 그 뒤에 색과 선을 잡아 나갑니다. 좋은 소재를 쓰고 기본에 충실하다 보면 귀한 옷이 되지요.”

그는 “한복은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라고 했다. 한복을 입을 사람의 생김새, 얼굴색, 체형, 분위기, 취향 등 모든 것을 고려해 옷을 지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흔히들 한복이 불편하고 어색한 옷이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건 한복을 옛 사람들처럼 충실하게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한복은 과학적인 옷입니다.”

연중 내내 한복을 입고 생활한다는 그는 “편안하면서도 기품이 있기로는 한복을 따라올 옷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이에게 한복은 ‘어릴 적 엄마가 그냥 시장에서 사다 준, 일년에 한두 번 명절에나 입는’ 옷으로 기억되죠. 따가운 싸구려 원단에 정성 없는 바느질, 꼭두각시처럼 알록달록한 한복이 전부가 아닙니다. 한복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어요.”

그는 한복의 미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글로벌 패션잡지인 ‘보그’의 각국 편집장들에게 한복 화보집을 보내기도 했다. 4년간의 준비 끝에 그가 펴낸 6cm 두께의 이 화보집에는 사계절의 한복 사진과 영문 설명이 담겨있다. 그는 “최근 들어 한복에서 모티브를 따가는 해외 디자이너가 많이 보인다”고 전했다.

“평소 기모노를 즐겨 입는 일본 사람들을 칭찬하고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은 한복을 가까이 하지 않는 현실이 정말 가슴 아픕니다. ‘한 번 입기엔 비싼 옷’이라는 말을 들으면 한 번이라도 한복을 더 입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한복을 활용할 줄 아는 젊은 디자이너가 많아져 우리 옷이 국내외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전통무용 전공 신세대 “시대 맞게 바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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