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591>君子는 喩於義하고 小人은 喩於利니라

  • 입력 2009년 1월 14일 03시 02분


유학의 고전은 義(의)와 利(리)의 변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둘의 변별을 義利之辨(의리지변)이라고 한다. ‘논어’ 里仁(이인)편의 이 장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義에 밝아서 일마다 義를 표준으로 삼는 사람을 君子(군자), 利에 밝아서 일마다 利를 표준으로 삼는 사람을 小人(소인)으로 규정했다.

고전에서 君子와 小人의 구별은 문맥에 따라 다르다. 여기서는 지혜와 덕이 있는 사람을 군자, 그렇지 못한 사람을 소인이라 했다. 喩(유)는 신속하게 깨우친다는 뜻인데 대개 曉(효)와 뜻이 같다. 於(어)는 ‘∼에서, ∼에 대해서’의 뜻을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 義는 옳을 宜(의)와 통하여 本然(본연)의 理法(이법)에 부합함을 말한다. 道義(도의)나 義理(의리)라는 복합어로 사용한다.

이에 비해 利는 자기를 이롭게 함을 말하며 利益(이익)이라는 복합어로 사용한다. 본래 利는 禾(화)와 刀(도)로 짜여 곡식 따위를 칼로 베는 형태로, 곡식을 베어 거두어 이익으로 삼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후한 때 ‘說文解字(설문해자)’는 곡식 베는 칼날의 날카로움에서 ‘날카롭다, 재빠르다’의 뜻이 나왔다고 풀이했다. 모두 통하되 여기서는 이익의 뜻이다.

남송의 陸象山(육상산)은 사람이 義에 뜻을 두면 義를 깨치고 利에 뜻을 두면 利를 깨친다고 주장했다. 정약용은 義를 깨친 뒤 義에 뜻을 두고 利를 깨친 뒤 利에 뜻을 둔다고 반박했다. 다만 義는 공변된 天理(천리)이고 利는 사사로운 人欲(人慾, 인욕)이며, 둘이 氷炭(빙탄, 얼음과 숯)의 관계라고 본 점은 같다. 天理와 人欲의 사이는 당초 머리카락 하나 끼울 수도 없을 만큼 좁지만 양극의 결과는 대단히 멀어진다. 그렇기에 유학은 인욕을 뿌리째 뽑고 근원을 막는 拔本塞源(발본색원)의 공부를 강조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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