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8년 체코 작가 차페크 사망

  • 입력 2008년 12월 25일 02시 58분


공상과학 만화 ‘퓨처라마’에서 로봇만 거주하는 행성 ‘차페크9’, 스타트렉 에피소드 ‘므두셀라를 위한 진혼곡’ 중 인조인간 ‘레이나 카페크’,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KAREL’과 컴퓨터 게임 ‘레드 팩션’에 등장하는 캐릭터 ‘카페크 박사’….

이 모두는 카렐 차페크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체코가 자랑하는 20세기 대표작가인 차페크는 저널리스트이자 극작가, 소설가, 평론가, 번역가, 동화작가, 시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벌였다.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어로 작품을 발표한 가장 유명한 작가로 꼽힌다.

차페크는 1890년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큰누나 역시 작가로 활동했으며 형인 요세프는 체코 현대 미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는 화가였다. 카렐 차페크는 프라하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차페크의 평탄한 삶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척추 질환으로 군복무는 면제받았지만 전쟁의 참상은 기술 진보로 인류가 더 편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행복한 상상을 산산조각 냈다.

그는 현대사회의 병폐에 관심을 갖고 문명을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대량생산 핵무기 인조인간 같은 혁명적인 발명에 뒤따를 수 있는 윤리 문제를 거론했다.

특히 희곡 ‘로섬의 인조인간’(1920년)에서 기술 발달이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로봇’이라는 신조어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로봇은 고된 일, 노예노동이라는 뜻의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한 말.

로섬의 인조인간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25년 ‘개벽’ 2월호를 통해서다. 회월 박영희가 ‘인조 노동자’라는 제목으로 네 차례에 걸쳐 완역했다.

1930년대 차페크의 펜은 나치의 잔혹한 위협과 파시스트 독재를 겨눴다. 파시즘이 득세하는 국가에서 지식인의 책무에 관한 글을 집중적으로 썼다.

게슈타포가 차페크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친구들이 끊임없이 이민을 제의했지만 그는 고국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치가 체코슬로바키아를 강제 합병하기 전인 1938년 12월 25일 폐렴으로 숨졌다.

전후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정권은 차페크의 작품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 작가가 생전에 나치의 대안으로서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받아들이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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