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넘어 길을 찾다]“국수주의 극복한 역사콘텐츠로 승부”

  • 입력 2008년 11월 10일 03시 03분


뮤지컬-영화계

히트제조기

윤호진-강우석 대표

《“우리 역사만큼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문화 콘텐츠도 없습니다.

5000년 역사에서 소재가 무궁무진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나라의 세계적인 콘텐츠도 역사물이 많은데 그 나라의 특수성과 역사적 보편성을 동시에 지닐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명성황후’로 한국 창작 뮤지컬의 성공 신화를 이끈 윤호진 에이콤 대표와 ‘투캅스’ ‘공공의 적’ ‘신기전’ 등을 만든 강우석 시네마서비스 대표가 최근 서울 중구 충무로 시네마서비스 회의실에서 만나 역사의 문화 콘텐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우리 역사를 다룬 콘텐츠를 내놓다 보면 민족주의나 국수주의 등 편협한 소재에 기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경쟁력 있는 소재는 역사”라며 공연과 영화계가 맞은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

▽윤=감독님 영화를 재밌게 봐 왔습니다. 어렸을 때 영화감독을 꿈꾼 할리우드 키드였어요. 토요일 두 편, 일요일 두 편씩 꼭 봤어요. 당시 우미관은 사회성 있는 작품, 명동은 애정물 등 특징이 있었죠. 그러다가 고교 시절에 사람 냄새 때문에 연극에 빠졌어요.

▽강=뮤지컬 ‘명성황후’를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제가 만든 영화 ‘한반도’에도 강수연 씨가 명성황후로 등장합니다.

▽윤=다음 작품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다뤘습니다. 일본 기자들에게 안중근을 다룰 거라고 했더니, ‘명성황후에 이어 안중근이냐’며 놀라더라고요. 민족주의에만 기대면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있고….

▽강=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한반도’ ‘신기전’ 같은 영화를 찍으니까 국수주의니 민족주의니라며 비판하는 이가 많아요. 하지만 그런 지적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독도 문제가 터지면 사회 전체가 “독도는 우리 땅” 하고 외치는데 식자층이 그럴 때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영화에 대해서는 논란을 제기하는 겁니다.

▽윤=‘레미제라블’ ‘에비타’ 등은 그 나라의 역사적 사건을 공연으로 만들어 세계적인 작품이 됐어요. ‘명성황후’를 뉴욕에서 공연할 때 한 유대인 할머니가 “공연을 보며 제2차대전 때 나치의 만행이 떠올랐다며, 한국도 이런 역사가 있는 줄 몰랐다. 많은 교훈을 얻었다”며 감사하더라고요.

▽강=‘신기전’을 비판하는 평론가가 많지만 “조선시대에 저런 무기가 있었는지 정말 놀랍다”고 하는 관객이 대다수였어요. 우리 역사는 연구가 많이 돼있는 데다 다양한 시각과 상상력으로 접근할 수 있어요. 그리고 실제 이야기여서 다른 나라에서도 보편성을 공감하기 좋은 소재입니다.

▽윤= 우리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것은 우리 이야기예요. 다음에는 장보고를 다룬 뮤지컬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강 감독님은 어떤 소재를 생각하고 계세요?

▽강=실은 ‘명성황후’를 제작해보고 싶습니다. 뮤지컬을 보고 강수연 씨한테 “내가 실수했다. 이렇게 매력 있고 소중한 인물을 영화에 꼭지로 집어넣다니…. 진작 봤어야 했는데…”라고 말했어요. 윤 대표께서 왜 이 소재를 택하려 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강=요즘 뮤지컬은 잘 되시죠? 영화계는 완전히 공포 수준입니다. ‘공공의 적 1-1: 강철중’을 하면서 500만 명은 넘을 거라고 낙관했는데 한 주 넘어가니까 썰렁한 반응이란…. 100억 원을 투자한 ‘신기전’도 겨우 본전 건졌습니다.

▽윤=뮤지컬도 영화계의 문제를 앓기 시작했어요. 9월에 ‘명성황후’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렸는데 객석의 절반을 채우기 어려웠어요.

▽강=뮤지컬은 왜 그렇죠?

▽윤=한정된 시장에 너도나도 뮤지컬에 뛰어드는 바람에 수준 이하의 작품이 막 나왔어요. 관객들을 실망시킨 거죠. 예전에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등 몇십 년에 걸쳐 검증받은 작품을 봐 온 관객의 눈높이도 올라갔는데….

▽강=영화도 그랬습니다. 지원금도 많고 투자도 들어오니까 고민 안하고 찍었는데, 그러면서 외면을 받기 시작했어요. 가장 깊이 반성해야 할 사람이 접니다. 무지 많이 찍게 했으니까.

▽윤=얼마 전부터 작품 제작을 공동으로 검토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맘마미아’를 만든 신시뮤지컬컴퍼니와 ‘명성황후’를 만든 에이콤이 공동 제작에 나서는 거죠. 서로 신중하게 접근하니 실패 확률도 적고 과다 경쟁도 막을 수 있죠.

▽강=예전에 일부 배우의 개런티가 너무 많다고 지적한 것도 시장에 비해 지나치다는 거였어요. 이번에 ‘신기전’이나 ‘모던보이’는 연기자들이 개런티의 절반을 반납했어요.

▽윤=‘명성황후’ 같은 경우는 유명 배우를 ‘모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영화계는 1990년대 중반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적은 예산과 연기력이 담보된 배우들, 참신하고 짜임새 있는 소수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의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면 4, 5년 뒤 다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윤=이번 기회에 시장만 보고 들어온 제작자들이 정리된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뮤지컬 아니면 할 게 없는 이들은 아무 작품이나 내놓지는 않으니까요.(웃음)

정리=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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