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농촌의 일그러진 현실 담아”

  • 입력 2008년 9월 18일 02시 59분


장편 ‘아웃’으로 문학수첩작가상 받은 주영선 씨

마을 언덕배기에 풍력발전기가 운치 있게 돌아가는 ‘위현리’에는 최근 경사가 생겼다. 주민들의 숙원으로 새롭게 지은 보건진료소가 완공된 것. 시장도 참석한 마을잔치는 초겨울 농한기에도 인근 마을주민들이 몰려들었다. 드디어 준공 기념 고사. 괜한 어색함에 고사 상에 절하는 걸 건너뛴 보건진료소장. 일은 그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올해 제6회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은 장편소설 ‘아웃’(문학수첩)은 섬뜩하다. 평화로운 강원도 시골마을 사내와 아낙들이 주인공이지만 실상은 전혀 잔잔하지 않다. 마을주민들은 타지에서 온 보건진료소장을 둘러싸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걸고 덤벼든다. 도시의 어두운 골목을 비웃기라도 하듯 협박과 기만, 위선과 허세가 넘쳐난다.

소설가 주영선(42·사진) 씨는 “그게 바로 지금 농촌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명절에나 찾아오고 휴가 때나 놀러오는 도시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 외환위기와 민선 지자체 출범 이후 변해버린 시골의 이면을 작가는 여과 없이 드러내고 싶었다.

“거의 평생 강원도 시골에서만 살았습니다. 하지만 도시인들이 맘속에 품고 있는 ‘고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예요. 요즘 농촌에는 ‘법보다 떼법이 더 세다’란 말이 있습니다. 떼를 지어 우기면 안 되는 게 없단 뜻이죠. 점점 인정이 망가지고 있어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소설 속에 투영하고 싶었습니다.”

‘아웃’은 일종의 농촌 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마을사람들을 쥐고 흔드는 할머니 장달자와 박도옥의 강짜에선 ‘엄석대’의 모습이 겹쳐진다. 사회적 결핍 속에서 담금질된 삐뚤어진 욕망. 하지만 작가는 “인간 군상 자체보다 그렇게 만든 사회적 시스템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들 역시 피해자거든요. 인정받지 못하고 평생 소외만 받다 보니 욕망이 왜곡돼 분출되는 겁니다. 더 슬픈 건, 그들은 그렇게 이웃이자 원수인 채로 살아간다는 겁니다. 평생 봐야 한다는 걸 알기에 앞에선 서로 감싸면서. 이런 시골의 결핍을 먹고 지금까지 도시는 풍요롭게 자랐던 게 아닐까요. 이제는 도시가 돌려줄 차례입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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