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살아난 19세기 ‘조선의 일상’

  • 입력 2008년 9월 17일 03시 02분


기산 김준근의 ‘목기제조’(왼쪽). 목기장 두 명이 갈이틀을 이용해 목기를 완성시키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림 위의 소년이 가죽끈을 갈이틀의 굴대에 감아 번갈아 잡아당기면서 굴대가 돌고 있고 아래의 목기장이 굴대에 재료를 갈며 모양을 내고 있다. 오른쪽 ‘창기검무’는 창기 두 명이 칼을 양손으로 휘두르며 춤을 추고 있다. 조선시대 무관이 쓰던 모자인 전립을 썼다. 사진 제공 청계천문화관
기산 김준근의 ‘목기제조’(왼쪽). 목기장 두 명이 갈이틀을 이용해 목기를 완성시키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림 위의 소년이 가죽끈을 갈이틀의 굴대에 감아 번갈아 잡아당기면서 굴대가 돌고 있고 아래의 목기장이 굴대에 재료를 갈며 모양을 내고 있다. 오른쪽 ‘창기검무’는 창기 두 명이 칼을 양손으로 휘두르며 춤을 추고 있다. 조선시대 무관이 쓰던 모자인 전립을 썼다. 사진 제공 청계천문화관
청계천문화관 ‘기산 김준근 특별전’ 23일부터

해외서 더 알려진 풍속화 대가… 도첩 첫 공개

19세기 조선. 돌아가신 아버지를 장사 지낼 장지(葬地)를 찾아 나선 상주(喪主)의 행색은 어땠을까.

상주는 우선 좋은 묏자리를 찾는 지관(地官)을 만났다. 상주는 밖에 나갈 때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었기 때문에 머리에 방갓(상주가 쓰는 삿갓 모양의 갓)을 썼다. 허리에는 삼의 줄기를 꼬아 만든 끈을 둘렀다. 손에는 부모상을 당한 슬픔으로 몸이 허약해져 지팡이를 짚는다는 뜻의 상장(喪杖)인 대나무 지팡이를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대나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오동나무 지팡이다.

구한말의 대표적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풍속도첩에 실린 ‘상인구산(喪人求山)’은 눈앞에 방갓 쓴 상주가 있는 듯 긴 묘사를 한 폭의 그림으로 생생히 묘사한다.

이 풍속도첩에 실린 또 다른 그림 ‘전사녹로(田舍(녹,록)로)’는 농부가 통나무를 배 모양으로 길쭉하게 판 용두레를 앞뒤로 흔들며 물을 퍼 논에 물을 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19세기 농촌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한 남자가 멜빵으로 곰방대를 물고 있는 여인을 등에 업고 간다. 그 옆에 패랭이를 쓴 남성이 함께 걸어가고 있다. 기산은 ‘유행매음(遊行賣淫)’에서 떠돌아다니며 매춘 행위를 일삼는 사당패의 모습도 담았다.

서울역사박물관 산하 청계천문화관은 23일∼내년 2월 1일 열리는 기획전 ‘기산 풍속도-그림으로 남은 100년 전의 기억’(02-2286-3410)에서 이 같은 기산의 풍속도 98점이 담긴 풍속도첩의 실물을 처음 공개한다.

기산은 1895년경 조선인 최초로 독일에서 개인전을 열 정도로 해외에서 유명했지만 국내에서는 생애나 이력이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서양 선교사나 외교관들에게 조선 문화를 알리기 위해 풍속화를 그렸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도 기산의 작품이 발굴, 연구되면서 한국 미술사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에 견줄 만한 풍속화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기산의 작품은 대부분 프랑스 기메박물관,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등 해외에 있다.

청계천문화관이 이번에 공개하는 풍속도첩은 색을 칠하지 않고 윤곽선만으로 표현한 작품들로, 사실적인 묘사가 인상적이다. 상례, 제례, 전통놀이, 부부의 생활, 무속, 농업, 밭갈이, 예술, 음악, 과거 급제, 상업, 거지의 동냥까지 19세기 조선의 모든 일상을 담고 있다.

부인이 장옷을 머리에 쓰고 성묘하러 갈 때, 곁의 하녀는 한 손에 돗자리를 들고 제사에 쓸 음식을 담은 목판을 이고 간다. 목기장이 목기를 만드는 장면에서는 목기를 갈기 위한 갈이틀과 갈이칼의 사용 모습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남편은 등짐을 지고 그 위에 아이를 앉혀 등을 구부렸고 아내는 물품을 담은 상자를 이고 그 뒤를 따르는 부부 행상 그림에서는 당시 서민 부부의 고단한 일상이 절로 느껴진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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