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랴 아이 키우랴…안해본 일 없죠” 고단한 워킹맘의 삶

  • 입력 2008년 8월 29일 15시 51분


소마 나오꼬 교수(왼쪽)와 홍승아 박사.
소마 나오꼬 교수(왼쪽)와 홍승아 박사.
소마 나오꼬 교수(왼쪽)와 홍승아 박사.
소마 나오꼬 교수(왼쪽)와 홍승아 박사.
"올해 18살이 된 아들을 키우며 친정에 맡겼다, 어린이집에 보냈다, 옆집 아줌마에게 부탁했다 안 해 본 방법이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홍승아(47) 박사는 결혼 뒤 직장과 집을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다보니 훌쩍 30대 중반이 되었더라며 한때의 힘든 시간을 털어놓는다.

일본 요코하마 국립대학 소마 나오코(35) 교수는 "믿을만한 보육 시설을 늘린다고 해도 밤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면 이산가족이나 다름없다"며 보다 가정 친화적인 사회가 되려면 노동시간을 먼저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25일 한국 여성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일-가족 양립정책 국제심포지엄'에서 홍 박사와 소마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가족정책을 소개했다.

실제 '워킹 맘'으로 살고 있어서일까?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두 여성학자는 한일 '워킹 맘' 의 삶은 통계수치보다 훨씬 팍팍하고 고단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한 울프 소르마르크(Ulf Sormark) 스웨덴 부대사는 아들과 부인을 데리러 가야 한다며 뒷풀이에 참석하지 않았다. 우리 세대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스웨덴의 남녀평등 정책보다 가족을 우선하는 문화가 더 부럽다" (홍 박사)

"스웨덴 안 소피에 두반데르(Ann Zofie Duvander) 교수는 일주일에 세 번은 오후 4시에 퇴근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최장 노동 시간을 두고 1,2위를 다투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소마 교수)

사회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으니 워킹 맘들은 개인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홍 박사는 "다행히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이라 강의 시간 사이사이에 아이를 데리러 유아원에 가곤했다. 항상 종종걸음으로 뛰어 다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소마 교수는 "가사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한다. 일본은 가사 도우미 비용이 시간당 2만~3만 원으로 비싸기 때문에 주부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직장과 자녀 양육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사회에 첫 진출하는 여학생들은 간절히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자아실현을 넘어 경제적 자립이 중요해진 것도 양국이 비슷하다.

"일본은 청년 실업이 남녀 차별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다. 얼마나 힘들게 취직했는데 그만둬야 하나, 다시는 취직을 못 할 수도 있다 생각하기 때문에 모두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여대생들은 특히 직장을 선택할 때 직장 보육시설이 잘 갖추어진 시세이도(資生堂) 같은 회사를 선호한다." (소마 교수)

"한국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지난 해 50%를 넘어섰지만 직장 보육시설 대상 사업자 중 단 22%만이 보육시설을 설치했다. 그냥 과태료 500만 원을 물고 마는 것이다. 출산이나 육아를 겪으면서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는 것은 개인이나 기업에 모두 손해다" (홍 박사)

이것은 단지 국가 지원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미래 노동력 확보 측면에서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5단체가 요청한 '규제개혁 과제'에는 육아휴직 중 해고 관련 벌칙 규정 완화, 육아휴직 신청에 대한 사업주 거부권 신설, 직장 보육시설 설치 의무 완화 등의 조항이 포함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가족친화적인 문화를 가진 일본 대기업 CEO를 조사 해보니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며 고생하는 딸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런 CEO 개인의 각성이 있거나 국제적인 마인드를 갖춘 기업이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을 지원한다" (소마 교수)

"그렇다. 한 중소기업 CEO는 실력대로 순위를 매기면 여자들이 훨씬 우수하지만 출산과 육아로 공백이 자꾸 생긴다며 해결책을 물어온 적도 있다" (홍 박사)

한일 양국은 육아나 간병 등 사회가 분담해야할 복지 부문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가족주의 전통이 강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같은 문화적 배경 아래서 상대 국가 가족 정책에서 배울만한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지 물었다.

"한국이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일본보다 낫다. 지난해 일본 후생노동성 장관은 여성은 출산 기계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또한 대통령제 아래서 정책 추진 속도가 훨씬 빠르다. 내각제는 정책 일관성은 있지만 새로운 실험은 불가능해 정책 추진이 속도가 매우 늦다" (소마 교수)

"일본과 한국은 외형적으로 가족 정책이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깊숙이 뿌리 내리지 못 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사실 일본의 실패를 교훈 삼아 연구 많이 한다" (홍 박사)

마지막으로 두 여성학자는 저출산 대책이나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만 '가족 정책'에 접근하는 것에 아쉬움을 피력했다. 유럽 등 선진 국가에서는 이런 경제적 논리보다 '아이의 권리''부모의 권리'라는 사회권이라는 시선으로 직장과 가족의 양립을 바라본다는 것.

"부모와 자녀가 함께 지낼 수 있는 것, 그건 가족의 당연한 권리 아닌가요"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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