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1000여명 공동체 “첫 마음 그대로”

  • 입력 2008년 7월 18일 02시 52분


120년전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외국인 수녀 4명 이땅에 첫발…

“주교님께서 청하신 대로 수녀 4명을 보냅니다. 자카리아 수녀는 원장으로, 에스텔 수녀는 고아들을 위해 보내오며, 또 중국인 수련 수녀 둘을 보내기로 연락이 되어 있사오니, 이제 곧 조선에도 수녀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1888년 7월 22일 오전 5시 제물포항에 프랑스 수녀 2명과 중국인 수련 수녀 2명이 도착했다. 프랑스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의 라크루아 총장 수녀가 제7대 조선 대목구장 블랑 주교에게 편지를 보낸 지 50여 일 만이었다.

제물포항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은 수녀들은 가마에 몸을 실었다. 양반다리를 한 채 서울로 향하면서 조선의 여름을 느꼈다. 이들은 버림받은 아이를 돌보며 이국땅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카리아 수녀는 불행하게도 오랜 여행과 낯선 풍토를 이기지 못해 6개월 만에 선종했다.

그 뒤 120년이 흘렀다. 서울 명동성당 뒤에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또 하나의 성당이 있다.

명동성당과 계성여고 사이 돌담길을 따라가면 붉은 벽돌 담장 너머로 고풍스러운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교회 최초의 수도회로 22일 한국 진출 120주년을 맞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의 수도원성당이다.

○ 수녀 12명 인천∼서울 옛길 따라 걷기 등 기념행사

4명의 외국 수녀가 뿌린 씨앗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시대의 아픔을 견뎌내면서 1000여 명의 공동체로 발전했다. 전 세계 35개국에서 4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 중 4분의 1이 한국인인 셈이다. 이제는 중국 러시아 터키 프랑스 아일랜드 미국 등지에 20여 명의 한국인 수녀를 파견했다.

첫 선교 수녀들의 정신은 세월을 뛰어넘어 이어지고 있다. 12일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서울관구의 수녀 12명이 첫 선교 수녀들이 가마를 타고 서울로 갔던 옛길(경인로)을 따라 걷는 행사를 열었다. 묵상을 하며 순교의 땅에 사랑을 전한 첫 선교 수녀들의 숭고한 뜻을 마음에 새기자는 취지였다.

22일 첫 선교 수녀의 발자취와 의미를 되새기는 특강, 9월 8일 기념미사를 한다.

서울관구장인 김영희(62·젬마 루시) 수녀는 “수녀회 초대 원장인 자카리아 수녀의 여행일기에는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라는 기도문이 적혀 있다”며 “첫 선교 수녀들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녀회는 유치원 17곳을 비롯해 서울 계성초등학교, 충남 논산시 쌘뽈여중고 등 교육기관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가톨릭계 병원과 보육원, 요양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펼쳐 왔다.

○ “선교정신 잊지 않되 다문화가정 등 소임 늘려”

하지만 이제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의 낮은 목소리를 더욱 크게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육과 의료 봉사를 통한 영적 나눔이라는 수도회의 기본은 바뀌지 않았지만 다문화가정과 호스피스, 청소년과 관련된 소임을 늘려가고 있습니다.”(김영희 수녀)

샬트르 수녀들은 겨울과 여름 옷 두 벌씩으로 생활한다.

생활비도 소임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몇만 원의 작은 액수이고 사용내용은 매달 보고해야 한다. 일을 해서 번 돈은 모두 공동체 소유이며 이는 수녀들을 위한 교육과 은퇴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된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가진 것이 없기에 더욱 단순하고 자유롭고 풍요로워지는 삶이다. 바로 120년 전 프랑스에서 이역만리의 조선으로 향했던 첫 선교 수녀들과 같은 마음이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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