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9>다다를 수 …

  • 입력 2008년 7월 18일 02시 52분


◇다다를 수 없는 나라/크리스토프 바타유 지음·문학동네

《‘1788년 4월 4일 라 로셸 항구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오가는 사람들과 떠들썩한 소리로 진동하고 있었다. 무장한 사내들이 마치 십자군 원정이라도 가는 듯 즐거운 표정으로 배에 올랐다. 작은 무리의 수도사들이 다섯 명의 수녀들과 함께 기도를 올렸다.’》

18세기 佛선교사, 베트남의 심연속으로

프랑스에서 대혁명의 전운이 감돌던 해, 그들은 그렇게 두 척의 배에 나눠 타고 프랑스를 떠났다. 미지의 세계 베트남을 향해.

한 해 전 베트남에선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켜 우옌 안 황제를 몰아냈다. 우옌 안은 프랑스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일곱 살 난 아들 칸을 프랑스로 보냈다. 그러나 국내의 정정 불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루이 16세는 베트남의 사정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가톨릭 교단이 대신 나섰다. 교회의 황금으로 배를 구입하고 여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해서 선교사들은 무장한 선원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떠났다.

이 책은 이들이 베트남에 이르기까지의 여정과 베트남에 도착한 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소설이다. 이국적 풍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긴 하지만 여행기라고 할 수 없는 책이다. 전반적으로 잔잔한 이야기 속에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자연의 섭리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녹아 있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베트남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남쪽 지방의 농사꾼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 그러는 동안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는 동방으로 떠난 선교사들을 까맣게 잊고 만다. 선교사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다시 배웠다. 베트남은 특유의 습기와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그들을 모두 딴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들은 그 땅에서 살고 죽는다. 그들은 하느님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선교사들이 베트남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대목, 베트남 생활에 젖어드는 모습에선 잔잔한 감동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의 전편에는 ‘죽음’이 곳곳에 나타난다.

프랑스에 온 칸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역만리에서 폐렴으로 목숨을 잃는다. 정복의 야욕을 부리던 무장 선원들은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현지인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중부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새롭게 길을 떠난 도미니크 수사와 카트린 수녀를 제외한 선교사들은 베트남 군대에 학살당한다.

목숨을 건진 도미니크 수사, 카트린 수녀는 중부지방 안남(Annam)에서 새로운 생활에 젖어든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 됐고 프랑스에 대한 관심은 점점 식어갔다. 프랑스가 그들을 잊어버린 것처럼 그들도 프랑스를 잊어버렸다. 저녁 때 하는 기도에도 진심이 깃들지 않았고 시편을 낭송하는 것도 습관에 그쳤다. 그들의 머릿속은 이제 베트남으로 가득 찼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뒤 카트린과 도미니크도 병으로 숨을 거둔다.

이 책을 추천한 이병률 시인은 “프랑스 선교사들은 잊혀졌다기보다 그들 스스로 인간의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이 책의 백미로 ‘한없이 나른하면서도 시적인 문장’을 꼽았다.

그의 지적대로 저자는 철저하게 단문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사는 대부분 생략돼 갑작스러운 문장의 등장에 어리둥절해질 때도 많다. 하지만 그런 특징 덕분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생각해볼 여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원제 ‘Annam’.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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