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년-위안의 詩]김영승 ‘반성16’

  • 입력 2008년 7월 17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후래자삼배(後來者三杯)라는, 술꾼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강제’가 있다. 술자리에 늦은 사람은 술 석 잔을 거푸 마셔 일찍 온 사람들과 어느 정도 취기를 맞춰야 한다는 화류계의 불문율이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따르고 싶지 않은 강제지만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취기가 다르면 언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달라지면 같은 의미를 얘기하는데도 서로 이해가 엇갈려 쌈 날 수 있다. 싸움 중에서도 제일 한심한 싸움이니 술 석 잔으로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싸움을 피해 보자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어떤가? 이 시는. 설명이 필요 없다. 시가 너무 빤한 얘기를 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김영승의 시는 사람들의 말문을 닫아 버리게 만드는 독특한 정황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김영승은 시의 천재다. 세상에 숱하게 많은 시인이 있지만 유독 김영승에게는 시인이란 말이 무슨 왕관처럼 들린다. 나는 그처럼 시인이란 칭호가 잘 어울리는 시인은 본 적이 없다. 가는 김에 좀 더 나가자. 시인이란 칭호는 오직 김영승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의 시가 내뱉는 독설, 자지러지는 해학, 박학한 지식, 이런 것들을 그처럼 자유자재로 시에 풀어 놓는 시인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시라는 바다에서 놀고 있는 한 마리 물고기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있겠는가? 그는 그런 시인이다.

나는 우울할 때마다 김영승의 시를 읽는다. 특히 어젯밤 마신 술이 ‘웬수’ 같은 아침에는 특별히 이 시를 찾아 읽는다. 그러면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하고 각오했던 바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빙그레 웃음이 나며 다시 술을 마실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취기가 그립다.

함성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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